왜 ‘만델라 장송’은 장엄했고 ‘DJ 장송’은 초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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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만델라 장송’은 장엄했고 ‘DJ 장송’은 초라했을까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3.12.13 22: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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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시인, 시성(詩聖)으로 불리우는 두보(杜甫)는 실의(失意)의 나날을 보내던 친구의 아들에게 보낸 격려의 편지속에서 ‘장부개관 사시정(丈夫蓋棺 事始定)’이라 했다.

‘대장부의 업적은 관뚜껑이 덮인 뒤에야 바른 평(評)이 나온다’는 뜻이다.

초췌한 몰골로 외진 골짜기에서 한탄의 나날을 보내지 말고 세속으로 나와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삶을 경영하라는 격려를 담았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관뚜껑을 덮은 뒤에야 나온다는 의미를 현세에서 실감하게 하는 ‘장엄한 장송(葬送)이 남아공(共)에서 펼쳐졌다.

지난 10일 자유와 인권, 화합을 위해 일생을 바친 만델라 전대통령이 남아공 국민들과 마지막 작별을 했다.

남미(南美)에서부터 아시아까지 전대륙 국가정상급 인사 91명이 참석한 가운데 흥겨운 축제처럼 추모식이 거행됐다.

클린턴·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오바마 현직 대통령에서 쿠바의 카스트로까지 앞다퉈 왜 남아공까지 날아갔을까. 비인간적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과 용서·화합을 동시에 이룬 위대한 영혼에게 ‘마지막 경의(敬意)’를 표하기 위해 초청장도 받지 않은 채 날아간 것이다.

9만5000석 규모의 경기장을 가득 메운 20만명 추모객들은 폭우속에서도 ‘굿바이 마디바(존경받는 어른)’·‘고마워요 티다(아버지)’를 합창했다.

만델라가 생전에 “국장(國葬)을 치르지 말고 간소한 묘비를 세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음에도 추모객 ‘7km의 인간띠’가 마지막 가는 길에 늘어서 애도했다.

만델라는 1993년 인종차별 철폐와 민주주의 정착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만델라의 역정(수감 27년)과 노벨평화상 수상은 DJ(김대중 전대통령)를 떠올리게 한다.

수감 5년의 DJ도 2000년 12월 10일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내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부분 81번째 수상자가 됐다.

DJ는 노벨평화상 수상결정 발표 직후 KB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공동수상을 하지 못해 아쉽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아웅산테러·KAL기 폭파 등 세계가 경악했던 ‘특대형 테러의 총 지휘자’와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을 꿈꾸었다는 것을 토로했던 것은 충격적이었다.

‘닥치고 통일’식 통일지상주의에 사로 잡혀 북한과의 연방제를 추진하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북한인민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외면했다. ‘제2의 건국’을 주창해 이승만 건국대통령·박정희 산업화 대통령 치적 폄하를 유도했다. 항일운동을 내세워 ‘김일성 수령체제’의 우월성을 긍정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비록 암울한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초석을 놓은 우파들의 공로를 철저히 부정했다.
남아공의 만델라는 27년 옥고를 안긴 인종차별 백인지도부를 껴안고 일체의 비난을 삼간 채 흑백통합과 화해를 일구어 냈다.

그러나 DJ는 동서대결·지역감정을 대권장악의 도구로 활용했다.

MB정부 출범초기 100일동안 계속된 촛불난동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 발현이다’고 찬양하면서 ‘들고 일어나라’며 반정부투쟁을 선동했다.

‘행동하는 양심’은 미국산 쇠고기를 ‘독극물’로 치부하면서 MB정부 무력화를 유도했다.

만델라와 DJ의 ‘그릇’의 용량차이가 크게 났던 탓일까.

만델라의 ‘화해 유전자’는 흑백갈등을 녹여냈고, DJ의 ‘부정·분열 유전자’는 좌우대결을 심화시키고 있다.

2009년 8월 18일 DJ유족들은 ‘최고의 예우’가 필요하다며 국장(國葬)을 요구했다. “생존해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장례형식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며 ‘국민장 타당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MB는 “유족의 뜻을 존중한다”며 국장을 결정했다.

우파단체들은 “제2연평해전 전몰장병을 조문조차 하지 않은 DJ의 현충원 안장은 호국영령들에게 용서가 안되는 일이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지(日紙)는 “국민의 정부를 자처했으니 국민장이 순리라면서 유족과 측근의 욕심이 과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현충원의 DJ묘소만 참배하고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좌파정당의 정체성 유지를 다짐하면서 DJ의 유지(遺志) 계승하고 있다.

DJ는 제2건국을 이룩한 ‘행동하는 양심’이었을까.

DJ의 ‘박정희 비토’는 철저하고 처절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불도저 앞에 드러눕고 향토예비군폐지를 역설했다.

만델라의 영결에는 91명의 국가정상급 지도자가 참석한 ‘세계인의 장례’가 되었지만 ‘대한민국 국장’ DJ의 장례식에는 주한외교사절만 참석했다. 세계 각국도 ‘DJ의 부정·분열 유전자’와 ‘김정일 추종’을 알고 있었음인가.

‘박정희 국장’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 ‘초라한 장송’이 안쓰러웠다.

DJ의 부정·분열유전자는 그의 자서전에도 극명히 드러난다. “농촌에서 새마을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였다. 아침마다 마을에는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농촌은 골병이 들고 있었다.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는 것 외는 농촌이 변한 것이 없었다.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이 잘 살게 되었다는 선전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DJ는 새마을운동 폄하에 그치지 않고 기만적 경제정책 구사도 서슴지 않았다.

IMF 국난 조기극복이란 치적만들기에 유동성 폭증을 동원했다.

길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대기업의 약탈적 대출을 유도했다.

일본 대부업체까지 끌어들여 살인적 사채시장을 만들었다.

이자제한법까지 폐지해 살인적 이자에 쫓긴 서민들의 자살비극을 연출했다.

‘외환위기 조기졸업’ 타이틀을 노려 ‘단군이래 가장 악질적 경제정책’ 신용대란을 조장했다.

‘국민의 정부’ 기간동안 자살율이 2배 이상 치솟아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이 씌어졌다.

‘행동하는 양심’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박지원은 12일 종편에 출연해 ‘인간 도살극’을 펼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이 “늠름하고 참 무서운 친구다”며 호평하면서 “북한 군부가 득세하지 못하게 김정은 체제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세습권력에 대한 한량없는 사랑을 보냈다.

DJ의 용공성 유전자는 박지원과 문재인에게 이어져 연방제 통일이란 백일몽을 꾸게 했다.

종북들에게 ‘인간도살’ 세습권력의 흉포성도 찬탄의 대상이 된다.

‘종북몰이로 종북척결’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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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백 2013-12-19 01:27:42
매번 읽을 때마다 공감 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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