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 참극' 막을 기회 없었나…법원·경찰에 쏟아지는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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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원 참극' 막을 기회 없었나…법원·경찰에 쏟아지는 화살
  • 김희영 기자
  • 승인 2022.09.18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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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전 직장동료인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A(31)씨가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전 직장동료인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A(31)씨가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법원과 경찰의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처벌법 허점 보완과 성범죄 관련 구속영장 발부의 허들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10월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촬영물 등 이용협박) 혐의로 A씨에 대한 고소장을 처음 접수,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다음 날 A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와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A씨는 이후에도 피해자에게 접촉을 여러차례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B씨에게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을 이용하여 350여 차례 만나달라는 연락을 취했고, 첫 고소를 당한 이후인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13일까지도 합의를 종용하며 20여 차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보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해 불구속 상태를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A씨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당초 A씨가 구속됐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경찰의 피해자 보호 시스템 역시 허점을 드러냈다. 

경찰은 첫 번째 고소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8일 피해자를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했지만 피해자가 원치 않아 스마트워치 지급과 연계순찰 등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피해자가 연장을 원하지 않아 한 달 만에 해제됐다.

하지만 보호조치 해제 후에도 A씨는 메시지 등을 보내 접근을 시도했다. 경찰의 안전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피해자는 지난 1월27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추가 고소했다. 

경찰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하고도 추가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거나 안전조치를 적용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첫 번째 고소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전이었으나, 두 번째 고소는 법률 시행 이후다. 사회적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이후였으나 추가적인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A씨를 지난 2월과 6월 재판에 넘겨졌고, 이후 1심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피해자 B씨를 찾아가 살해했다. 스토킹 범죄 가해자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보호조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법원과 경찰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위험한 범죄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지난해 10월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구속이 됐으면 아마 여성은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인 이은의 변호사는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의 결정이 아쉽다. 우리나라는 성범죄 전반적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잘 안된다"며 "일반적으로 직장을 가지고 있고, 가족과 주거를 하는 등의 배경 때문에 2차 가해의 우려가 낮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경찰 조치와 관련해서도 내부에서부터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추가 고소도 사실상 동일한 사안이라고 본 것 같다. 구속영장 기각 사유가 변경된 것이 없어서 재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스토킹 내용을 봤을 때 한 번 더 해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의 대대적인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반의사 불벌죄'를 규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스토킹 처벌법은 친고죄다 보니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스토커들이 피해자를 쫓아다니며 계속 합의를 종용하고 협박하는 문제점은 입법 때부터 이야기가 됐지만 법률 개정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도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될 때도 반의사 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국회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며 "스토킹 처벌법에 무심했던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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