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 장군 숨진 곳 찾아 스토리 텔링화 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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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장군 숨진 곳 찾아 스토리 텔링화 시켜야”
  • 안경희 기자
  • 승인 2017.10.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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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장군이 태어난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세워진 기념비

영덕군 지품면 눌곡 상게
친척집 찾아갔다가 참변
개전에 추모비 건립 좌절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이 숨진곳을 스토리 텔링화시켜 역사 문화의 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신돌석 장군 후손들에 따르면 최근 해군에서 오는 28일 경남 진행에서 신돌석 장군 부대를 창설한다며 장군의 후손들을 초청했다는 것이다.

앞서 해군은 지난 8.15 광복절에는 장군의 애국심과 나라사랑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한 1800톤급의 잠수함의 함명을 신돌석 함으로 명명 한 바 있다.

신돌석 장군의 손자 신재석씨(67)는 “최근 정부가 신돌석 장군에 대한 호국 정신과 애국심이 재조명 되고 있는 것 같다며 장군이 순국한지 10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장군이 숨진 곳은 가려져 가고 잊혀져 간다며 떳떳치 못하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역사도 이제는 찾아내어 스토리 텔링화 시켜 후세에 전하는 일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병대장 신공유기 등 지역 사료에는 1908년 12월 11일 밤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상게에 살고 있는 장군의 6촌 친척집을 찾았다가 일본군 현상금에 눈이먼 형제들이 독주를 마시고 잠든 장군의 뒤통수를 돌로 내리쳐 장군이 피를 흘리며 마을 앞 개천으로 도망쳐 내려오다 눈덮인 널따란 암반바위 위에 누운 채로 새벽에 숨졌다고 기록 되어있다.

김희곤 안동대교수(사학과)는 “2000년도에 신돌석 ‘100년만에 귀향’이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사료에 기록된 바위를 찾아내고 개전 입구에 추모비를 세우려 했으나하자 마을이 특정 성씨(경주 김씨)의 집성촌이고 장군을 죽인 6촌도 같은 성씨라 수치스럽고 죄 같다며 건립에 반대를 했고 영덕군도 지역 정서 운운하며 미온적인 태도로 유야무야 되었다”고 말했다.

기자도 지역민과 같이 17년전에 김교수가 찾았다는 장군이 숨진 바위를 찾아갔으나 개천 정비 사업과 마을 진입로 확,포장사업등으로 주변 지형이 다 바뀌어 바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역민이 이상하다고 가르쳐 준 곳에 큰 바위가 반쪽으로 튀어 나와 있었는데 정비 사업 중 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누군가 그 바위 위에 붉은 사각의 암석 덩어리를 무슨 표시석 같이 콘크리트를 발라 세워 놓은 바위를 볼 수 있었다.

신돌석 장군의 후손들은 장군이 태어난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일원에 추모 사당과 기념관·생가·유적비 등을 만들어 매년 추모제를 올리는 등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데 장군이 순국한 곳은 가려져 이제 아는 이들마저 사라져 가고 전설처럼 되어간다며 아픈 역사도 바로 찾아 역사의 현장으로 후세에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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