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마을교회 종지기…무소유 삶 실천 아동 문학가 권정생 선생 1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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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마을교회 종지기…무소유 삶 실천 아동 문학가 권정생 선생 11주기
  • 김태영 기자
  • 승인 2018.05.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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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는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세요”유언
안동은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작품세계가 펼쳐진 곳이다. 그의 삶은 고스란히 문학이 됐다

몽실언니, 무명저고리와 엄마
점득이네, 사과나무 밭 달님 등
주옥같은 동화 100여편 펴내
몽실언니, 초판 이 후 100만 부 돌파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께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평생 지독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오히려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나 한 듯 ‘강아지 똥’을 필두로 ‘몽실언니’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떨친 선생은 오히려 안동 조그만 마을 교회의 종지기로 16년을 살다가 14년간을 빌뱅이 언덕 밑에 흙집을 짓고 작품 활동을 했다.

선생이 타계한 지 11년,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면서 죽을 때까지 인세 수입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남북 분단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그 고귀한 뜻을 다시 한 번 기리기 위해 성자 같은 삶을 살다간 선생의 일생을 재조명해 봤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에 귀국, 어려서부터 힘겹게 생활해오다가 안동시 조그만 마을 교회의 종지기로 정착하면서 ‘강아지 똥’ 등 동화를 발표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그 이름을 떨쳤다.

자신이 쓴 모든 책에 대한 인세는 유언에 따라 남북한 분쟁지역 어린이돕기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에 맡겼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따라 남북화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 때 10여년 전 설립한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져 어려서부터 나무장수와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으로 힘겹게 생활하였다. 객지를 떠돌면서 결핵과 늑막염 등의 병을 얻어 평생 병고에 시달렸으며,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4년부터 교회 뒤편의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혼자 살면서 작품 생활을 하였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에도 검소하게 생활하다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거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2009년 3월 그의 유산과 인세를 기금으로 하여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 위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그의 삶과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아간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1969년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받은 '강아지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강아지똥이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꽃을 피워내는 데 소중한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다.

아동문학가로 명성을 떨친 권정생(1937∼2007)은 생전에 "열에 들뜬 몸으로 써 나갔다. 아침에 보리쌀 두 홉을 냄비에 끓여 숟가락으로 세 등분으로 금 그어 놓고 저녁까지 나눠 먹었다. '강아지똥'은 50일간의 고통 끝에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그는 '몽실 언니' '무명저고리와 엄마' '점득이네' '사과나무밭 달님' '오소리네집 꽃밭'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등 100여 편의 주옥같은 동화를 펴냈다.

'몽실 언니'는 해방과 한국전쟁, 극심한 이념 대립 등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은 작은 어린이의 사실적인 기록이면서 처참한 가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감싸 안은 한 인간의 위대한 성장기다. 1984년 초판 출간 이후 2012년 100만 부를 돌파했다.

20대 전후로 얻은 폐결핵과 늑막염, 신장결핵으로 고통받으며 글을 쓴 그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인세 10억원이 든 통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인세를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2014년 폐교였던 일직남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어린이문학관인 '권정생 동화나라'로 꾸몄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과 50일 전 쓴 '유언장 1, 2'는 큰 울림을 남긴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베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동화나라에서 5㎞가량 떨어진 빌뱅이 언덕의 오두막집은 일직교회의 허름한 문간방에서 교회 종지기로 16년을 살다가 1983년 '몽실언니'의 계약금으로 지었다. 이 집에서 죽을 때까지 인세 수입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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