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은 너무나 멋진 사람" 추모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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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은 너무나 멋진 사람" 추모열기
  • 정리=김기환 기자
  • 승인 2010.08.15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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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제에 앞장선 한국의 민관 외교관 "큰 인물 잃었다"



디자이너 앙드레김(본명 김봉남)이 지난 12일 향년 75세의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지난달 12일 앙드레김은 폐렴증상으로 인해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달 되는 날 앙드레김은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앙드레김의 역사는 한국패션의 역사
앙드레김의 역사는 한국패션의 크나 큰 업적을 남겼다. 역사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드레김은 60년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조차 치부로 여기던 시절에 여성복을 만든 최초의 남자 디자이너 였다. 또 1966년에는 한국디자이너로는 최초로 프랑스 대사관 주선으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앙드레김은 다양한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앙드레김은 쥬얼리, 도자기, 안경, 속옷, 벽지, 아파트까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는 한 디자이너의 브랜드 가치가 패션을 넘어 산업 전반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최초의 사례다.

▲옷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다’ 앙드레김의 패션세계
앙드레김이 사업적인 영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그의 디자인은 결코 유행을 좇지 않았다. 한해에도 10번이 넘는 패션쇼를 열지만 앙드레김이 일반적인 디자이너들 처럼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는 일은 없었다.
기실 앙드레김이 자신의 패션쇼에서 선보이는 의상들은 ‘전형적’이라고 할 만큼 한 가지 스타일을 고수한다.
동양적인 소재들을 사용해 극적인 화려함을 연출하는 그의 의상들은 의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앙드레김 스스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새로운 스타일’보다 우위에 두고 작업해왔다.
이 같은 작품세계는 앙드레김이 문화사절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패션쇼를 열 때 그의 작품에 대해 ‘한국적 아름다움’이라는 설명을 가능케 하는 이유기도 했다.

▲민간 외교관’ 의 역할
앙드레김에게 가장 빈번하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민간 외교 사절’이라는 설명이다. 앙드레김이 국가 간 수교나 관련 행사에 단골로 초대돼 패션쇼를 여는 것은 그의 디자이너로서의 위상과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 뿐 아니라 그의 민간 외교 사절로서의 탁월한 역량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앙드레 김이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패션쇼를 연 것도 프랑스 대사관의 주선이었다. 앙드레김이 해외에서 여는 패션쇼는 단순한 패션쇼가 아니라 정, 제계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사교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여는 다양한 자선 패션쇼에 국내에 머무는 외교관 가족들을 빠짐없이 초청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앙드레김이 1982년 이탈리아 문화공로 훈장, 1997년 정부 문화훈장, 1999년 샌프란시스코의 11월 16일 `앙드레 김의 날` 선포, 2000년에는 프랑스 4대 장관급 훈장 중 하나인 예술문화훈장 수상 등은 그의 입지와 영향력이 단순히 패션계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짙은 메이크업 과 남자라는 수식어뒤의 인간미
몇 년 전 앙드레김이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사진 한 장이 큰 화제가 됐다. 평소 완벽한 메이크업과 트레이드마크인 화려한 순백색의 의상 탓에 연상이 쉽게 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평소 앙드레김의 일상은 소소하고 소탈했다. 앙드레김은 분식집 사진이 화제가 된 후 매체 인터뷰를 통해 "싸고, 맛있고, 빨리나와서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앙드레김은 "어린 학생들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앙드레김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 앙드레김에게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 요청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앙드레김의 소탈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앙드레김은 어떤 누구의 부탁이라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들어줬다. 사진을 함께 찍어줄 때는 자연스러운 포즈까지 취해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앙드레김은 평생을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하며 살아왔다. 그가 한해 10여차례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패션쇼는 거의 대부분이 자선기금 모금을 위함이다.
앙드레김은 유니세프의 한국 위원회가 문을 열기 전부터 유니세프와 인연을 맺어왔고 실제로 유니세프 활동에 동참하는 상당수의 연예인들을 소개한 것도 앙드레김이다.
국제 백신 연구소, 대한적십자 등 제3세계 빈곤퇴치와 이들의 교육기금 마련, 등 갖가지 종류의 자선사업에 참여해왔고 각종 홍보대사 역임 역시 이 같은 그의 자선기금 모금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성실한 납세, 국산 원단사용을 고집하는 등 앙드레김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유명인사로 기억된다.

정리=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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