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와 두 눈,오똑한 콧날
선한 눈 아래 미소 머금어
두 뺨의 턱선도 조화 이뤄
신라 와당 기술 대표작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이봉직의 동시 '웃는 기와'는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신라 문화재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를보고 쓴 것이다.
신라 천 년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이 문화재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2일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수막새란 둥근 형태의 와당으로, 목조 건축의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됐다.
일제강점기 경주 흥륜사지에서 출토됐다고 알려진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경주의 한 골동상점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다가 박일훈(1912~1975)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노력으로 1972년 국내로 돌아왔다.
와당 제작틀(와틀)로 찍어낸 일반적 제작 방식과는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수막새로, 신라의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초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이 작품이 환수 46년이 지나서야 보물로 지정되는 이유는 뭘까?
국립박물관 소장품은 소장자가 굳이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상당수가 지정에서 누락돼 있었고, 최근 와서야 하나둘씩 새삼스레 보물로 지정되는 추세다.
1970년대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2014년에 와서야 보물로 지정된 '농경문 청동기'(보물 1823호)가 대표적인 예다.
또 하나, 기와 조각은 옛 건축물이 있던 발굴지에서 흔하게 쏟아져 나오는 유물이라 이 중 특정 유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 수막새는 틀로 찍지 않고 손으로 빚었다. 왼쪽 하단 일부가 사라졌으나 선한 눈 아래 살짝 머금은 미소가 아름답다.
문화재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에 대해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선이 조화를 이룬 모습 등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엿보인다"며 "신라인들의 염원과 인간적인 모습을 구현한 높은 예술적 경지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발길에 채이던 기와 조각' 중 하나가 뒤늦게 '예술품'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문화재청은 이날 '군위 법주사 괘불도'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경선사명(銘) 청동북' '장철 정사공신녹권'도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