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국보(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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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국보(國寶)’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9.06.0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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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정권때 8년동안 경제수석을 맡아 한국 중화학공업의 기틀을 마련한 오원철씨(91)가 지난달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오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보(國寶:나라의 보물)라는 찬사를 들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을 이끌어 ‘한국 산업화의 주역’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 화학공업과(科)에 재학중 6.25 전쟁이 나자 기술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한 뒤 소령으로 예편했다.

엔지니어 출신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효시가 됐다.

1961년 5.16 직후 기술 인재를 찾던 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 최고회의 기획조사 위원회 조사과장으로 발탁했다.

▲ 1965년 초 상공부 화학공업 1국장 오원철은 대통령 연두순시 보고에서 “북한에서 비료,비날론 섬유 등 모든 화학 및 섬유제품을 석탄을 원료로 해서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고 생산비가 많이 들어 많은 나라가 폐기한 공법(工法)입니다.우리나라에서 석유화학공업이 완성되면 경공업 분야에서 남한이 단연 우위에 설수 있습니다” 고 했다.

오원철의 연두 순시보고에 설득당한 박정희는 즉석에서 ‘석유화확 공업 기획단’ 구성을 지시했다.

가발·광목(섬유) 같은 경공업으로 연명하던 대한민국에 석유화학공업이 태동한 순간이 됐다.

북한은 석탄에 섬유를 뽑는 ‘주체섬유’ 비날론을 자력갱생의 상징으로 자랑하며 10억 달러를 투입해 함흥 비날론 공장을 지었다.

무연탄에서 비날론을 뽑는데 전기가 너무 많이 들어 공장을 폐쇄했다.

북한의 섬유공업은 진정한 테크노라트가 없어 폭삭 망했다.

▲ 1971년 일본 오사카(大阪) 총 영사관은 북한이 조총련(朝總聯)에 제공한 북한 발전상 홍보영상물을 입수했다.

박 전 대통령은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을 청와대로 불러 시사회를 가졌다.

북한의 김책 제철소 용광로는 쇳물을 쏟아내고 무기공장에서 탱크를 제조하는 영상등을 박 전 대통령과 정부 부처 간부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박 전 대통령은 줄담배를 피우며 체제 경쟁 열세 만회책 구상에 골몰하면서 오원철 제2 경제수석비서를 호출했다.

오원철은 북한처럼 병기(兵器) 전용 공장을 운영하지 아니하고, 민수용(民需用) 기계공업공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사실, 이 공장들은 평소에는 산업용 자재를 생산수출하고 전시(戰時)에는 병기부품을 생산하는 민수·군수 겸용 기계공장 건설·운영을 건의했다.

충격적일 정도로 획기적 아이디어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해 달러를 벌자는 묘안도 오원철이 내놓았다.

1960~70년대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이 표리일체(表裏一體) 라고 주장했던 오원철이 한국 중화학 공업 설계사가 되어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보(國寶)로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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