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시민단체(박정희와 구미공단 기념비 추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8일 구미공단을 설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과 공단 관계자, 이주민들의 사연이 들어간 기념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 제막한 구미공단 50주년 선언문 비(碑)와 9월에 제작한 구미공단 50주년 홍보영상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빠진 것이 아쉬워 헌정 기념비를 제작하겠다고 했다.
이 단체와 구미공단 측은 “가난을 극복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과 가족·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근로자들의 애절함을 헌정기념비에 새겨 넣겠다” 고 설명했다.
헌정기념비와 홍보영상 제작에 드는 4천여 만원은 800여명 회비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파독간호사협회, 재경(在京) 구미향우회도 후원에 참여했다고 했다.
▲2019년 구미공단 50주년을 맞아 구미시가 제작한 홍보영상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빠졌다고 한다. 그 대신 DJ의 구미4공단 기공식 참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출 200억 EKEFFJ 달성 기념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의 구미형 일자리 협약 참석 장면이 들어갔다.
구미시는 ‘ 박정희 대통령이 빠진 것’ 은 제작업체의 실수라고 둘러댔으나 두차례 시사회를 한 걸 보면 실수로 보기엔 힘든다. 현 구미시장은 민주당 소속·민노총 출신이다. 우파인사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빼고 어떻게 구미공단을 말할 수 있느냐” 며 분개해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1967년 제6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은 60년대 일본에서는 전자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성장 동력’ 에 주목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수출을 주도한 섬유산업과 미래전략산업인 전자산업을 함께 육성할 최적의 입지를 물색했다.
섬유도시 대구에 인접해 있고 낙동강 물을 공업용수로 끌어올수 있는 구미를 낙점했다.
1969년 9월부터 조성에 들어간 구미공단이 윤곽을 드러내자 읍(邑) 소재지에 불과했던 구미에 전국 팔도의 생산인력이 몰려들었다.
70년대 중반 금성사(현 LG전자)가 입주해 전자제품생산기지로 발돋움하고, 1988년 삼성전자가 국내최초의 휴대전화 SH-100을 개발해 ‘애니콜 신화’ 가 시작되면서 구미공단은 ‘한국의 실리콘 밸리’ 로 발돋움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운동장에 2000여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이 ‘품질확보 ’ 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집결했다. 15만대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불호령에 따라 500억원대의 ‘불량 휴대폰 화형식’ 이 치러졌다.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등소평이 생전에 경제발전 모델로 삼은 박정희의 대표적 성공사례, ‘ 낙동강의 기적’ 의 표상은 구미공단이었다.
‘낙동강의 기적’ 의 발원지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울산과 맞먹던 ‘부자 공단’ 구미가 빈사상태로 헤매고 있다.
삼성·LG 등 대기업 생산라인 베트남·수도권으로 이주했다.
구미공단은 ‘제2의 박정희’ 출현을 갈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