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巨人) 박정희는 ‘프로’… 김일성은 ‘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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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巨人) 박정희는 ‘프로’… 김일성은 ‘아마’였다”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3.07.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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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은 6·25 전쟁의 정전(停戰)협정을 체결한지 60돌 되는 날.

6·25전쟁을 미제(美帝)와 이승만 정권이 합작한 북침(北侵)이라고 뒤집어씌우는 북한은 이날을 전승(戰勝)기념일로 명명(命名)하고 대대적 자축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낙동강 방어전에 막혀 적화통일에 실패한 북한은 전승(戰勝)이란 미망(迷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연평도 포격까지 감행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승리해 6·25전쟁을 ‘영광스러운 승리’로 자리매김했다.

김학렬 부총리를 ‘경제 스승’, 중화학공업·방위산업육성을 기획했던 오원철 경제2수석비서를 ‘오 국보(國寶)’라는 별칭으로 부르며 ‘수출제일주의’를 배워가며 지휘했던 박정희가 스스로 ‘수령’으로 등극해 폐쇄경제를 고집했던 김일성을 압도한 결과가 오늘날 남과 북의 격차이다.

지난 17일 현대경제연구원은 “북한의 2012년 1인당 명목 GDP를 ‘783달러’로 추정한다”는 경제력 비교자료를 발표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GDP는 2만3113달러. 북한은 남한의 3.4%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 4월 18일 영국 좌파성향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dian)은 극명하게 대조되는 남북한의 실상을 담은 사진을 크게 싣고 남북한 경제지표 등 32개 분야를 비교했다. 가디언이 크게 쓴 사진은 인공위성이 촬영한 야간의 한반도 사진.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은 마치 불난 것처럼 전 지역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반면에 북쪽은 평양에만 희미한 불빛이 보일 뿐 나머지 지역은 암흑천지였다.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 남한은 인구 1000명당 815명, 북한은 1000명당 1명. 기대수명은 남한이 평균 79세로 북한보다 10년을 더 살아가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디언은 “남한은 서구화·산업화한 국가인 반면에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하고 가난한 나라이다”고 결론지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해 미국의 원조로 연명했던 극빈국가 남한이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모범국가가 된 것은 북한의 남침을 극복하고 이룬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가 모태(母胎)되었기 때문이다.

1961년 북한은 1인당 GDP가 137달러로 남한의 82달러의 1.5배였다. 1962년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오래지 않아 모든 인민들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고 선포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 박상길에게 남북한의 역량대비를 설명했다. “전력은 남한의 5배, 석탄생산능력은 2배, 시멘트는 5배, 조강생산능력은 북한이 56.1만t인데 비해 남한은 전혀 없다”는 절대열세였다.

북한의 1인당 GDP는 1987년 986달러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일제(日帝)가 개발에 정성을 쏟았던 세계적 공업지대를 중무기 생산시설로 전락시킨 북한은 망조를 좌초하는 특출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북한의 노동당은 1970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당 지도이념으로 공식화했다. 김일성은 무조건성·절대성의 신격(神格)을 갖는 전체주의적 지도자 ‘수령’이 되었다.

김일성은 대외적 자주노선을 체제의 정통성으로 표방하면서 자급자족적 ‘민족경제’를 강조했다.

북한을 자폐적 체제로 전환시키면서 개혁·개방을 거부했다.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은 1995년 헌법보다 상위규범인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黨)’.

‘김일성 조선’이란 표현을 삽입하고,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원년(元年)으로 표기했다.

북한은 김정일 세습 이후 사실상 군주제 정권으로 변모해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 세습을 정당화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북한은 엄청난 식량난을 겪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한 탓으로 대외원조가 끊긴 상태 속에서 몇 차례 대홍수와 태풍을 겪었다.

국가의 기본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300만명이 굶어 죽었다. 북한의 김정일은 인민들을 구휼할 식량을 수입하지 않고 선택한 것은 김일성 시신 안치소의 성역화였다.

금수산 궁전의 총면적은 350만㎡. 궁전 축조비용으로 1조원을 쏟아 부었다. 3차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28~32억 달러를 투입했다.

옥수수 1000만t을 구입해 북한전체인민이 3년간 배불리 먹게 할 수 있는 거금이 김일성 신격화·핵개발 비용으로 날아갔다.

인민의 굶주림에 아랑곳하지 않는 김정은이 3억달러를 투입해 스키장 건설에 나섰다. 스키마니아 김정은 전용시설 조성에 북한의 국고가 거덜나고 있다. 남한의 박정희는 5·16혁명 당시 82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을 1979년 1546달러로 늘렸다. 비전과 추진력, 집념을 고루 갖춘 ‘작은 거인’은 ‘5000년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보릿고개를 추방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父女) 대통령을 ‘귀태’라고 모욕을 가한 민주당 의원 홍익표를 꾸짖는 댓글이 ‘박정희의 치적’을 대변했다.

“홍익표 이놈, 네놈이 1950~1960년대 사회상을 아느냐. 그 처절하게 굶어죽던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네놈 부모에게 쌀밥을 먹였다”·“극좌파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질타였다.

북한은 과연 구제불능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중국은 1980년대 집단농장을 해체해 가족농(農)으로 바꾸었다.

개혁이전에 정부가 수납한 양만큼은 계속 거둬들이고 그 나머지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과 판매권을 허용했다.

식량에 대한 실질적, 사유권이 인정된 이후 농업생산량이 연평균 7%씩 증가했다.

북한도 협동농장을 해체해 가족농으로 전환시키면 한해 식량부족분 200만t은 7년만에 메울 수 있다고 식량전문가들이 추정했다. 북한이 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는 체제이행을 단행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체제이행이 없는 북한과의 연합·연방제는 북한을 원조의존적 수렁으로 빠지게 하고 남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 모두 공멸의 동반자가 되는 길이다.

백낙청(서울대 교수) 등 극좌파들이 문재인을 당선시킨 이후 노린 ‘2013체제’는 남북한 연방제였다. 김씨조선·김씨세습왕조에 ‘남한의 국고’를 털어주자는 ‘새빨간 음모’였다.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를 빌미로 벌이는 대선불복공세는 남북한 연방제 재추진의 우회전략이다.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 종북세력의 암수(暗手)를 분쇄해야 한다. 남한의 작은 거인 박정희와 북한 혹부리수령 김일성의 국정운영능력 격차는 프로와 아마의 차이 그대로였다.

사심없는 지도자는 나라를 살렸고 사심 많은 지도자는 나라를 망쳤다.

종북(從北)들은 남북한 경제력 격차의 원인을 직시하고 ‘이념의 질곡’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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