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까불면 죽는다’는 도발응징 의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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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까불면 죽는다’는 도발응징 의지 보였다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5.08.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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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천안함 폭침·11월 연평도 포격을 자행한 ‘아비 김정일’의 군사적 만행을 ‘아들 김정은’이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답습하다가 ‘임자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원칙 뜨거운 맛을 보았다.

‘도살자(屠殺者) 김정일’은 대한민국의 ‘장사꾼 대통령 이명박(MB)’ 길들이기를 즐겼다.

‘5·24 조치’ 경제적 제재의 쓴맛을 보기는 했으나 기(氣)싸움은 이겼다.

MB는 천안함 참극 1주기를 맞아 공허한 ‘말의 성찬’을 펼쳤다.

“북한의 주장대로 진실을 왜곡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용기 있게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며 폭침을 부정하는 종북(從北)들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정작 천안함 폭침의 원흉 김정일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의 표출은 없었다.

대북 심리전 방송재개 시늉은 냈으나 대북 풍선 날리기조차 저지했다.

북한의 중앙통신이 “리명박 역도, 역적 패당”이라며 하루에도 수십번 내보는 비방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청와대에 초치한 거룩한 목사님의 ‘사랑의 설교’에 ‘아멘’을 연발하고 통성기도를 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대북 심리전 방송도 주저했을까.

북한의 전쟁협박이 두려워 미국의 바지가랑이를 움켜잡았던 MB는 ‘김정일의 노리개’였다.

전쟁은 화력(火力)·군비(軍備) 이전에 ‘의지(意志)의 싸움’이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하와이 진주만에 닻을 내리고 있던 미국 ‘태평양 함대’가 일본 ‘연합함대’의 기습공격에 처참히 무너졌다.

일본은 파죽지세로 영국의 ‘동양 함대’를 격침시키고 난공불락 요새 싱가폴을 점령했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던 필리핀 주둔 미군도 일본군에 두손을 들었다.

일본을 쉽게 이길 것이라는 미국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군은 패전을 거듭했다.

“미군이 당장 일본을 응징할 방법이 없다”는 합동참모본부의 보고를 받은 루즈벨트 대통령은 격노해 소아바비로 앉아있던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서서 군수뇌부를 질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미군의 전쟁의지를 닦달했다

의회와 국민들도 기다려주지 않고 하무라비 법전 방식 ‘이에는 이’의 복수를 주문했다.

해군성(省)은 ‘항공모함을 최대한 일본본토에 근접시켜 폭격작전을 펼친다’·‘육군이 보유한 장거리 폭격기들을 항모에 탑재해 작전에 나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노련한 조종사 출신 두리들 대령(大領)은 중형폭격기 B-25를 개조하면 활주로 150m 항공모함에서도 이륙이 가능한 것을 알아차리고 대원을 선발해 훈련을 거듭했다.

1942년 4월 2일 항모 호네트에 탑재된 B-25 폭격기 16기(機)와 승무원 80명은 ‘일본의 심장을 폭격하러 간다’며 위험천만 ‘복수혈전’에 나섰다.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한다’며 돌아올 수 없을 가능성 크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서운 용기를 내어 ‘비장한 임무’ 수행에 돌입했다.

일본 전격 공습에 참여한 80명 중 살아서 본국에 귀환한 용사는 두리들 대령을 포함하여 71명.

미국 국민과 루즈벨트 대통령은 환호했다.

두리들 폭격대의 ‘복수혈전’은 미드웨이 항공모함 대전(大戰)에서 ‘미국해군의 압승‘을 도출했다.

미국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투철한 ‘전쟁의지’는 ‘일본 연합함대의 격멸’이란 기적을 낳았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고 한다.

‘소아마비의 용장’ 루즈벨트는 결연한 전쟁의지로 독일·일본을 초토화했다.

2011년 3월 당시 경기도지사 김문수는 육군 1사단을 찾아가 “심심하면 포격 도발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북한에 ‘까불면 죽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지사 김문수는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에 어정쩡 대응한 MB에게 ‘남한 길들이기’를 용인한다는 불만을 표출했다.

북한은 휴전 이후 DMZ 일대에서 무려 504회나 무력 도발·납치·습격을 벌였다.

최근의 목함지뢰매설 공격을 더하면 DMZ 도발집계는 505회.

NLL 등 기타국지도발을 합하면 1100여건.

남측을 깔보고, 종북세력을 부추겨 ‘전쟁공포증’을 확신시켰다.

참여정부 대통령 노무현은 “남북관계 하나가 잘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쳐도 좋다”며 보안법폐기까지 시도했다.

북한에 평화를 구걸하면 결코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며 북한의 무수한 도발에 맞대응 보복했다.

정규군(軍)으로, 비정규군 육군 HID, 특수북파공작원들을 입북시켜 보복했다.

북한 도발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격적 대응, 결의에 찬 연설은 국민들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안도감을 주었다.

‘도발 응징’은 새로운 도발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계획된 보복작전이기도 하다.

‘계획된 보복작전’은 이스라엘의 주특기(主特技).

1970년 이스라엘 수상이었던 여장부(女丈夫) 골다메이어는 1973년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암살사건을 자행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에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모사드(이스라엘 첩보조직)에 명령했다.

모사드는 ‘막강한 무기’ 불타는 애국심으로 20년간 ‘검은 9월단’의 테러 관련자 수십명을 추적해 모조리 처단했다.

‘신의 분노’란 암호명으로 전개된 모사드 작전은 팔레스타인 테러단 수괴들에게 ‘까불면 죽는다’는 ‘피의 보복’을 인지시켰다.

북한의 1·21 청와대 습격,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사건 관련자들은 국내 종북세력들의 ‘물타기 비호’로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건재했다.

북쪽의 위해(危害)세력에 보복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면, 전쟁공포증으로 평화를 구걸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의 존립정당성이 약화될 것이다.

북한을 길들이는 방법은 북한의 전쟁위협에 우리도 전쟁의지로 맞서는 것이다.

‘서울 불바다’ 위협 무기로 등장한 장사정포(砲) 위력도 가늠했다.

1994년 김영삼 문민정부시절 북한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 박양수가 판문점 대좌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을 기점으로 남한의 좌익들은 ‘장사정포 공포’를 확산시켰다.

2010년 ‘뚜껑을 열고보니 그간의 공포가 과장되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당시 북한군은 122mm 장사정포 6문을 동원해 170발의 포탄을 날렸다.

그 가운데 80발만 연평도에 떨어졌다.

90발이 7㎢ 거대한 표적 연평도를 맞추지 못하고 바다에 꽂혔다.

지난 20일 북쪽에 36발의 대응포격을 했던 K9자주포는 터키·폴란드에 수출된 명품 국산무기.

북한의 탄약 불발율(不發率)은 25%선.

장사정포를 꺼내 장전하는 동안 한미연합군의 대응전력은 홀가분하게 장사정포 격파에 나서게 된다.

‘김씨조선 통치자’·‘백두혈족’ 김일정-김정일-김정은 세습왕조는 6·25 동란을 일으켜 동족 300만명 숨지게 했고, 휴전 이후 북한 동포 300만명을 굶어죽게 했다.

인구 24% 핵심세력의 결사옹위 속에 황제급 호사를 누리는 김정은이 ‘멸망의 지름길’ 대남 통일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영악한 김정은’은 한미 연합군을 포격하는 전쟁을 결심한 이유가 없다.

남한 길들이기 각종 도발에 ‘전쟁불사(不辭)’의 의지로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남한이 응징 못할 것이다’는 북한의 오만한 고정관념을 깨트려야 평화가 올 것이다.

김정은이 ‘대북 심리전 중단요구 불응 땐 초토화’ 경고장을 보내왔다.

이제는 ‘까불면 죽는다’는 도발응징으로 되레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 지배층인 백두혈통·핵심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부(富)를 독점하고 세습하기 위해 ‘착취적 경제제도’를 고집하는 ‘악(惡)의 축’이다.

악의 축(軸)의 도발을 응징하는 것이 정의(正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도발응징 원칙’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질서를 가져올 것이다.

36발 대응포격은 ‘평화구걸’을 청산하는 축포였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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