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성·교육열 “국가 발전의 원동력”
상태바
근면성·교육열 “국가 발전의 원동력”
  • 서희건설 베트남사무소 사장 박성주
  • 승인 2009.08.22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포스코 청암재단에서는 베트남 호치민과 하노이 지역 대학에 수십 명에게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장학금 지원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서 포스코는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가장 좋은 회사, 가장 좋아하는 회사, 신뢰 할 수 있는 회사, 도움이 되는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로 대기업들의 베트남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코의 투자사업은 차질없이 당초 계획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사가 진행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것이 베트남 정부 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바탕에는 KOTRA나 대사관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적기에 교민들의 기업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주고 지원, 협조하여 주는 한편 한국과 베트남간의 각종 문화, 친선행사 지원을 통하여 한류의 분위기를 이끌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끊임없이 하여준 덕분이라고 분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서는 전반적으로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 한국의 한강개발 모델, 포스코의 제철소 건설운영 모델 등을 선호하는 듯 하다. 흔히 하는 말로 경제에도 한류의 열풍이 일고 있는 듯 하다.

금년 10월 경엔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베트남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통령방문은 向後 양국 협력증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베트남은 동남아국가에서는 정치, 경제적으로 유력한 국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한국과의 경제교류, 친선교류도 활발하다.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서 한국은 대만, 말레이시아, 일본에 이어 4번째다. 아직 경제규모는 작고 무역규모도 수출 629억 불에 수입 804억불로 175억불의 무역역조 현상이다. 원유수출이 가장 크고 수입은 기계류가 많다. 우리나라와의 무역은 수출 18억불에 수입 70억불로 우리나라로서는 52억불의 흑자를 낼 만큼 큰 무역국이다.

나는 아직 베트남 말을 못한다. 그래서 불편한 적이 더러 있었다.
외국인이 베트남 말을 하면 베트남사람들이 반색 하는 것을 몇 차례 보았다. 특히 일반시장 같은 곳에서는 물건을 살 때는 베트남어를 사용해야 한다. 영어 같은 외래어들을 상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는 베트남 말을 사용하여 물건을 살 때 흥정하고 깎아서 산다. 베트남 말을 하면 물건 값이 싸고 못하면 비싸진다. 베트남은 채소며 과일 같은 食生活품은 재래시장에서는 근으로 달아서 판다.

베트남은 우리와의 유교적 정서 면에서 공감대가 높다. 가족중심사회, 효도사상, 관혼상제, 음력 설 문화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의 풍습과 비슷하다. 그래서 적응도가 높은 만큼 베트남 여성의 한국신부가 3만 5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근래 市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나 각종 단체들도 베트남과 자매 결연도 늘어나고 있다 한다.
베트남도 경로사상이 높고 예의가 바르다. 베트남 사람들은 순박하고 예의 바른 점이 많다. 나의 아내가 가끔씩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면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데를 가고 오는데 매번 좌석에 앉아 간다고 한다. 버스를 타면 남자 차장이 주위를 들러 보다가 아무 젊은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 자리에 나의 아내를 앉혀주는데 한번도 그 젊은이가 거스른적이 없다고 한다. 베트남에 소매치기가 있긴 해도 일상생활의 치안은 안전한 편이고 교통 단속도 많은 편인데 뒷돈을 주고 해결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죄의식 없는 습관적 거짓말을 하고 변명할 때는 미소를 짓는다. 또 직업의 귀천도 가리지 않아 보인다. 여자들이 하는 일이 모두 인 것 같아 보인다. 농촌 모내기, 공사현장의 인부, 거리 노점상, 채소, 과일 장수 등 힘든 일, 쉬운 일 가리지 않는다.
오토바이 인구도 삼분의 일은 여성들이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많고 관공서에도 여성이 많다. 또 여성들의 질투심도 대단하다고 한다. 극성스러움이나 질투심 때문인지 베트남 관공서 직원에게 접대문화는 점심시간에 해야 한단다. 저녁시간에는 어김없이 일찍 귀가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는 죽은 호치민 주석이다. 호주석 시신은 하노이 시내 바딩광장에 안치되어 관광코스로 안내되고 있다. 그는 청빈, 겸손 그리고 베트남 국민들의 가슴속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주고 희망을 주고 어떠한 정적도 포용하고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 온 덕으로 그가 살아생전 과시했던 영향보다 死後의 국민적 존경심과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한다.

호 주석은 미국과의 오랜 전쟁 중에도 5천명이상외 젊은 인재들을 모아 소련, 중국, 동유럽 등에 유학을 보냈다. 전쟁이 끝나고 통일후의 국가운영의 민족 지도자를 양성시킨 것이다. 그가 유학을 떠나보내는 젊은이들에게 남긴 말 한마디는 그들의 심금을 울렸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정부가 어려워서 너희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지만 너희들은 지금 전쟁으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인민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는 것이다.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조국의 많은 인재들이 희생될 것이고, 너희들의 부모 형제들도 죽어갈 것이다. 조국을 대신해 이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받아 두어야 할 약속이 하나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들은 학업을 마치기 전에는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한 다음, 너희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조국의 강산을 과거보다,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아름답게 재건해야한다. 너희들은 공부하는 것이 전투다.”

호주석의 이런 인재관은 결실을 맺었다. 고통 받고 있는 부모형제를 떠나 타관만리에서 유학한 그들은 호 주석의 염원대로 국가 재건의 원동력이 됐다. 오늘날 베트남 정부, 경제, 문화 등 각 부문에서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호치민 유학생들이다. 그는 자유와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을 자주 강조했다. 정신적으로 굳게 무장되어 있을 이들 호치민 유학생들이 오늘날 베트남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 베트남 국가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들 유학생들이 사회주의 국가 일변도로 치중된 까닭에 업무처리의 제도적 투명성이나 선진 시스템 적응이 원활치 못하다는 것일 것이다. 나는 베트남이 장차 우리나라 이상의 발전과정과 저력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베트남 인들의 근면성과 명석한 두뇌, 끈기, 높은 교육열과 높은 교육수준, 높은 손재주 등은 또 다른 커다란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