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임오년 마지막 산행 1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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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임오년 마지막 산행 12시간
  • 이종길
  • 승인 2009.04.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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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봉에서 본 영취산

함양의 한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고 임오년의 마지막 날 아침 6시 20분 중기부락 행 버스를 탔다. 부락에 들어서기 전부터 산과 들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찬 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마을에서 중고개재까지 오르면서 ‘지난번에 민박만 할 수 있었더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하는 생각을 하니 마을회관을 두고도 재워주지 않던 마을 인심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날씨가 추워서였는지 예상보다 10여분 빨리 중고개재에 올라서서 잠깐 쉰 다음 7시 30분 산행을 시작했다.

얼마안가 능선에 쌓인 눈은 10cm가 넘었다. 지난 일요일에 2〜3명이 지나간 듯 눈에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이 깊으니 어쩔 수 없이 앞사람들이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가야 했다. 보폭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떠오르자 바람도 자고 조금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서쪽의 건너다보이는 장안산에 당장 한줄기 퍼부을 듯이 검은 구름이 몰려들더니 곧 가스가 앞을 가려 시계(視界)는 10여m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발자국뿐이기는 하지만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그들이 앉아서 쉰 곳이면 나도 서서 잠깐 숨을 돌리면서 “겨우 5〜6분 걷다 또 쉬느냐.”고 핀잔도 하고, 또 때로는 눈이 올지도 모르니 서둘러 걷자면서 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오르막이 계속되는 능선을 오르다 보니 묵은 쌍묘가 나왔다.

덕은봉에서 가야할 육십령까지의 긴 능선

꼭 2시간을 걸은 뒤였다. 우선 배낭을 벗어 던지고 흠뻑 젖은 네카치프로 땀부터 닦아냈다. 심호흡 두어 번으로 몸도 마음도 상쾌해졌다. 쌍묘의 후손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성묘 한번 하려면 고생깨나 하겠다면서 100m쯤 오르니 백운산 정상이었다. 함양의 이름난 산이라 정상주변에는 사람이 많이 올랐던 흔적이 역력했다. 발자국이 많아서가 아니라 귤껍질과 사탕, 과자를 먹은 흔적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어서였다.

앞서간 사람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니 표지석만 확인하고 그대로 발길을 옮겼다. 왼쪽으로 건너편의 금남호남정맥을 바라보면서 산죽 사이를 걷다보니 때로는 사리나무 군락과도 만났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갈라지는 영취산 정상에 오른 것은 11시 45분.

정상 바로 아래 바람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공터에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돌리면서 우선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아무래도 오래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일어섰다.

그런데 오른쪽의 내리막길로 방향을 바꾸어 가야하는 것을 왼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을 향해 내려가고 보니 무령고개였다. 고개에 내려서고 난 다음에야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다. 길 따라 북쪽으로 가면 논개 생가가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그 곳에나 둘러볼까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관광은 조금 접어두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는 싫었다. 내친김에 이 산의 길이라도 정확히 알아두자 싶어 내려온 길을 버리고 오른쪽 계곡을 건너 영취산 정상까지 둘러 가는 길을 택해 올랐다. 정상까지 오르니 1시 15분이었다. 조그마한 부주의로 또 1시간 15분을 허비한 셈이었다. 시간도 문제이지만 육십령까지 갈 길은 먼데 체력 소모가 더 걱정이었다. 덕운봉 옆을 지나 전망대 바위까지 1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전망대 바위에서부터 백두대간 마루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좌우로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었다. 능선 왼쪽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온 듯 눈이 없었다. 그러나 오른쪽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가 하면 능선아래 나무 가지에 눈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백운산 정상의 이정표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설화였다. 옛날 지리산 천왕봉이나 노고단, 또는 한라산의 겨울 등산에서 만났던 그 아름다움을 생각하느라 배낭의 무게를 잊은 채 발걸음도 가벼웠다.

밀령에 내려선 것은 오후 5시였다. ‘얼마 안 있어 어둠이 몰려들 텐데’라고 생각하니 쉴 겨를이 없었다. 빤히 보이는 고압송전 철 답을 향해 열심히 올랐다. 10분의 거리인데도 꽤나 멀게 느껴졌다. 깃대봉 못 미쳐서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기왕에 늦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예 배낭을 내려놓고 수통에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간식을 먹으면서 10여분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영취산을 출발한 후 배낭을 벗어놓고 제대로 쉬기는 이때가 처음인 것 같았다.

깃대봉을 지나 10여 분이 지났을까. 능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이미 사방은 캄캄한데다 하얀 눈 위에 찍힌 발자국만 보고 길을 서둘다 보니 주변을 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2〜3분 내려가다 보니 몇 개의 발자국이 우왕좌왕하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처럼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다시 되돌아오려니 짜증도 나고 목도 말랐다.

길을 제대로 찾아 5분쯤 내려오니 언덕 아래 길 오른쪽에 깃대봉 샘이 숨어 있었다. 서서 단숨에 물 두 컵을 마시고 나니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눈길을 열 시간 이상 걸어서인지 얼마안가 양쪽 무릎이 뻐근해 왔다. 이래서야 내일 덕유 능선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날이 밝기라도 하다면 앞길이라도 훤히 보여 괜찮겠는데…. 눈은 여전히 쌓여있어 미끄럽기도 하고 헤드랜턴을 켰지만 겨우 10여m 앞이 보일 뿐이었다. 육십령이 멀지 않다면 자동차 소리라도 들릴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더욱 답답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에만 정신을 집중시킨 채 한참 걸었더니 내리막이 심해지면서 오른쪽 아래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이제 겨우 오늘의 산행이 끝나구나 하고 있는데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도 보였다.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우선 맥주 한 병을 사서 단숨에 들이 키고 보니 7시 50분이었다. 중간에 여러 번 쉬기는 했지만 눈길을 꼬박 12시간 30분을 걸어온 셈이었다.
하루 종일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는 산행은 언제나 육체는 고달프고 마음은 고독에 시달려야 하는 괴로움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몇 시간 달콤한 잠에 빠졌다가 다시 높은 산 앞에 서면 새로운 의욕이 살포시 고개를 쳐든다.

백운산에서 영취산으로 가는 도중의 눈밭

이런 산행을 삼사일 계속해 보라. 비록 산 자체는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극히 평범한 코스라고 하더라도 먼저 어깨를 파고드는 배낭의 무게로 인한 아픔을 속으로 삼켜야하는 육체적 고통이 따른다.

당장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은 긴 산행에서 고통을 감내하다보면 오랜 세월 자신을 짓누르던 온갖 삶의 갈등이 어느 한순간 봄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지금 짊어지고 있는 배낭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하는 무소유(無所有)의 편안함과 즐거움에 마음은 저리도록 아파온다. 이것이 장기등산의 참된 묘미가 아닐까.

내가 한창 1박 2일의 수많은 단독행을 할 때는 남들이 미련하다고 할 만큼 홀로 걷기만 하는 산행을 자주했다. 쉬지 않고 오르다 머리가 어찔하면서 구토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발자국을 옮기기 힘들만큼 지친적도 많았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산행일수록 더 오래 기억되고 즐거운 회상으로 남아있다.

고통스러운 산행 뒤에 몸과 마음을 휘감으며 찾아드는 나른한 그 쾌감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이해할까. 산에서 혼자 며칠간이라도 생활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에게 황금보다 더 귀중한 자기발견의 즐거움을 안겨줄 터이니 말이다.

육십령이라고 하면 신작로가 나기 전에는 동쪽의 안의현이나 서쪽의 장수현에서 이 고개 마루까지 60리로 어느 쪽에서나 크고 작은 고개 60개를 넘어야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지명의 유래로 길이 험하다 보니 도둑이 많아 장정 60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 하여 육십령이라고 불렀다고도 전한다.

이것 말고도 이곳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곳으로 옛날 군비를 비축하고 군사들이 머물던 곳이란 뜻의 군장동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있다.

계미년 새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5시에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약간씩 휘날렸다. 무릎 컨디션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등산 여부는 완전히 날이 밝으면 결정하기로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6시가 조금 넘자 왁자지껄하여 밖으로 나오니 장수 등 인근에서 해돋이 구경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동쪽하늘은 그런 대로 맑았지만 서북쪽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지난밤의 일기예보대로 눈이 내릴 것 같아 등산을 아예 포기하고 함양으로 향했다.

◇산행메모 2002년 12월 31일 06:20 함양출발(버스), 06:50 중기부락도착, 07:25 중고개재 도착, 09:40 백운산, 11:45 영취산 도착(15분 점심), 12:24 무령고개, 13:15 영취산 재출발, 14:45 전망대 바위, 17:00 민령, 17:45 깃대봉, 19:45 육십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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