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경영’·‘따뜻한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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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경영’·‘따뜻한 경영’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0.10.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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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상식적인 추론(推論)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학(UCL)대학 연구진이 50세 이상 성인 수천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부자들의 DHEAS(체내 호르몬의 일종인 천연 스테로이드)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數値)가 높은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하고 친구·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해 장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富)가 스트레스를 억제하면서 정신적 자유를 주는 것은 물론,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는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한국의 부자(富者)들을 대상으로 영국에서와 똑같은 연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화·태광그룹의 비자금조성관련 검찰의 수사가 한창이다. 태광그룹의 이임용 창업회장이 포항시 청하면 출신이어서 고향사람들이 수사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태광그룹의 탈세·로비·비자금조성 의혹과 관련한 검찰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이호진(47)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세간의 분석·평가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태광그룹은 이임용 선대회장이 1954년 창업한 태광산업으로 출발했다. 이임용 회장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포목점을 경영한 부인 이선애(82·태광그룹 상무)씨가 마련한 종자돈으로 태광산업을 세웠다.

이임용 선대회장은 “직원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자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만들고 지키면서 인화(人和) 경영을 고수했었다. 증시에서 황제주(皇帝株)로 대도약을 이룬 가업(家業)의 승계자 이호진(42) 회장은 회사 분위기를 정반대로 바꿨다. 반강제적 구조조정·쥐어짜기 경영으로 계열사들을 키웠다. 태광그룹의 주력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흥국생명의 전체직원은 300명 남짓, 10년 전에는 3000명을 넘었다.

급여 직무연동제를 실시해 월급도 많게는 반토막 수준까지 줄였다고 알려졌다. 서울대 경제학과-미국 코넬대 경영학 석사-뉴욕대 박사과정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회장은 “사람들을 너무 잘라낸다”는 ‘차가운 경영’을 과시하면서 그룹을 키운 것이다.

이회장은 미국식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태광산업 등 계열사의 자산과 회사의 기회이익을 자신과 장남(16세)에게 편법으로 이전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인가’. 태광그룹의 자문위원을 맡았던 사람이 작심하고 세세한 제보서를 만들어 검찰에 건넸다. 주주(株主)들의 이익을 해친 범죄사실을 근거로 전방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회장 등 오너 일가가 받는 스트레스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경우에서 부(富)는 단명(短命)의 촉진제가 된다. 돈(錢)에 덕(德)을 입혀 유용하게 사용한 어진 사람(仁者)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외롭지 않는(不孤) 현자(賢者)가 되는 것이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영광의 뒤안길을 그려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탄생될 수 있도록 성심껏 도왔던 갑부(甲富)가 서거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지난 20일 한국 핸드볼의 중흥을 이끈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이 작고했다.

그는 경기고-연세대 법학과-브루클린 공대 대학원 코스를 밟은 엘리트였다. 위기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따뜻한 경영’을 고수했다.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했던 IMF위기 때도 ‘무감원·무감봉·무분규’의 3무(無) 경영을 이끌었다. 설회장이 신입 영업사원과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고 “고맙네”라며 손을 잡아준 일화는 ‘따뜻한 경영’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돈(錢)에 덕(德)을 입힌 대기업 오너들이 속출하고, 기부문화가 꽃필 때 ‘차가운 경영’은 꼬리를 내리고 ‘따뜻한 경영’의 신화창조가 열릴 것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소박한 교훈이 되살아난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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