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업자’의 독재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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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업자’의 독재타령
  • 유수원 <편집인>
  • 승인 2011.02.1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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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중국총리 원자바오는 평양에서 동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중국군 묘소를 찾았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 등 한국전쟁 때 전사한 134명의 중국군 유해가 묻혀있는 묘역을 찾은 것이다.

원자바오는 묘역 맨 앞에 자리 잡은 마오안잉 흉상에 꽃다발을 바치면서 ‘통곡의 신고식’을 했다. “마오안잉 동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이제 조국(중국)은 강대국이 됐으며 인민은 행복합니다. 이제는 편히 쉬세요”하면서 ‘회환의 눈물’을 뿌렸다.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시대를 열면서 주창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 시대를 끝내고,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떨쳐 일어섬)가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4210달러. 미국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을 추월한 G1 국가를 꿈꾸며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올인하고 있다. 중국의 상전벽해(桑田碧海) 이전을 되돌아보면 ‘시장경제’를 외면한 ‘계획경제’의 후과(後果)가 기근과 아사(餓死)라는 대 참상을 초래했음을 절감할 수 있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마오쩌둥의 주도의 ‘대약진 운동’이란 농공업 대증산 정책이 시행됐다.

마오(毛)는 그 당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영국을 15년 이내 추월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무리한 계획을 입안했다. 인민에게 과도한 할당량을 부과한 ‘무리한 증산’이 오히려 생산력 저하를 가져왔다. 중국의 극좌(極左) 대약진 운동은 400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구가 굶주림과 기아로 사망하는 참혹한 재앙을 낳았다. 마오(毛)의 정책실패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체 사망자수에 이르는 인구를 전쟁 없이 굶어죽게 했다.

마오(毛)는 실추된 권위를 극좌 문화혁명으로 복원하려했다. ‘10년 대란’도 극좌모험주의의 단말마(斷末魔)로 종결되면서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복권되었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를 전개하면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다’는 실용주의정책을 추진했다.

1979년 덩(鄧)이 미국 방문 후 주창한 ‘개혁개방정책의 전범(典範)’은 ‘박정희(朴正熙) 성장모델’이었다. 미국의 아시아문제 전문가 윌리엄 H 오버홀트(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 자문위원)는 그의 저서 ‘초강국으로 가는 중국’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은 한국 박정희의 경제성장 모델을 모방했다’고 기술했다. 덩샤오핑의 후계자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한국 근대화의 원조 박정희’의 모방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13억 인구의 중국이 세계 2대 경제강국으로 도약함에 보탬이 된 ‘박정희식 부국강병’을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손곱만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목포상고’출신 DJ(김대중)와 민주화 운동 주도권을 싸고 경합하면서 반독재(反獨裁)를 입에 달고 살았던 YS(김영삼)가 철학과 인식의 빈곤을 드러내는 노추(老醜)를 또다시 과시했다. 지난달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동지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YS는 “나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무섭게 투쟁해 왔다”․“18년 장기독재를 한 박정희는 이 나라의 원흉이고 당시 이 나라는 세계에 부끄러운 참혹한 독재국가였다”며 자신의 민주화 투쟁을 회고하면서 ‘박정희 폄하 독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6.25 전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미국 원조 농산물을 실은 화물선의 부산항 도착이 며칠만 늦어도 수백만명이 대책 없이 굶주려야 했던 ‘초근목피의 나라’를 YS와 DJ의 민주화 투쟁으로 건져냈다는 평가는 들어보지 못했다. ‘박정희의 독재’는 자립경제․자주국방의 한 수단이었다. 가난추방․북한추월 등 국리민복(國利民福)에 혈안이었던 박정희 진면목을 중국의 덩샤오핑은 알아보았다.

‘IMF국난(國難)’을 부른 YS가 박정희의 공(功)을 인정하는 안목을 가질 수 있을까.
‘보리고개 극복을 인식하지 못하는 민주화 업자’는 독재타령으로 시종(始終)할 것 같다.
유수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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