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민(愛民)과 ‘통일벼의 기적’
상태바
애민(愛民)과 ‘통일벼의 기적’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2.03.10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력자들의 명예욕(名譽慾)·과시욕(誇示慾)은 남다르다. 명예를 앞세워 권력의지를 불태우고, 과시욕을 발휘해 성취감을 맛본다. 권력자들의 명예·과시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벤트는 무엇일까.

대학들이 ‘누이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권력자들을 초청해 ‘명예박사’ 고깔을 씌어준다. 우리나라 역대(歷代) 대통령 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을까. 단연 DJ(김대중)가 톱이다. DJ는 국내외를 통틀어 16개, YS(김영삼)는 10개, 전두환은 3개, 노태우는 3개, 노무현도 3개를 받았다. 현직 대통령 MB(이명박)은 1998년 한국체대 이학 명예박사를 시작으로 몽골국립대(경제학) 등 모두 6개를 받았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수없이 쏟아진 학위수여제의를 모두 사양해 명예박사분야 빈털터리다. 실속없는 헛된 명성이나, 허장성세(虛張聲勢)를 꺼려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로부터 진실을 구하려 했다.

자유당의 장기집권에 민주당은 ‘못살겠다·갈아보자’는 선거구호로 맞섰다. 자유당 정권이 4·19 의거(義擧)로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해도 ‘배가 고파서 못살겠다’는 절량농가(絶糧農家)의 비탄은 되풀이 됐다.

1962년 보리수확기를 덮친 장마비로 궁핍의 공포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5·16’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소장은 최고의회 의장 신분으로 “앞으로 국민을 굶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5척 단구(短軀) 박정희’는 태산준령보다 높은 ‘4천년 보리고개 극복’ 도전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일찌감치 산업화 정책을 추진해 ‘한강의 기적’ 발판을 만들었다.

중국의 ‘5척 단구’ 덩샤오핑(鄧小平)은 1960~7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 실패로 3000만명 이상이 굶어죽는 ‘이념의 지옥’을 목격하고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를 내세워 “인민을 배부르게 만드는 일이면 뭐든지 하겠다”며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한국의 5척단구와 중국의 5척단구는 리더십의 본질이 애민(愛民)에 있음을 자각하고 국민들이 굶어 죽어 나아가는 것을 목격하는 치욕을 씻기 위해 ‘개발독재’를 스스로의 죄업(罪業)으로 선택했다.

대통령 재임시절 ‘박정희 흔적지우기’에 열중했던 노무현은 퇴임후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김형아 교수(호주 국립대)에게 “외국에 돌아다녀보니 외국지도자들이 온통 박정희 얘기뿐이더라”고 실토했다. 노무현은 재임 5년동안 23차례에 걸쳐 49개 국가를 순방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다 해외방문 기록을 세웠다.

노무현은 “박정희가 비록 독재의 힘을 빌렸더라도 뛰어난 관치경제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게 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4천년 보리고개’ 추방이 민주화 타령만으로 가능할 수 있겠는가.

지난 2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강릉 견소동에 있는 농촌진흥청 산하 고랭지 연구센터를 찾았다. 농진청연구운영과장은 “지난 50년간 국가주도의 연구개발(RD) 사업 가운데 박정희 정부시절 개발한 통일벼가 1위를 차지했다”며 “40년전 배고픔을 해결한 통일벼를 이제 개발도상국가에 전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973년 가을 추수를 마친 농가들은 일생을 통해 처음으로 쌀밥을 실컷 먹었다. 석섬을 수확하던 벼논에서 통일벼는 닷섬이 나왔다. 고(故) 허문회 교수(서울대)의 피나는 노력 끝에 탄생된 통일벼(1R667)는 재배 4년차인 1974년에는 한국을 쌀 수입국에서 졸업시키고 다음해 1975년 식량자급을 이루게 했다.

4000년 동안 이어온 굶주림을 몰아내려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종학자·농업공무원·농민들의 의지가 세계에 유례없는 쌀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없었다면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현대중공업·삼성반도체가 가능했겠는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웠던 YS와 DJ가 번갈아 집권했다면 ‘가난’이 불러온 정정(政情) 불안은 난치병이 되어 ‘한국의 좌절’을 곱씹게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 의식속에 드리운 ‘박정희 향수’는 그의 애민(愛民)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산당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며 철저한 반공(反共) 속에서 구축된 한국 산업화가 좌파들의 ‘저주의 굿판’이 됐다.

“부자와 서민을 갈라서 정권을 잡은 후 보복하겠다”는 속내에 ‘애민’은 찾아볼 수 없고 ‘증오’만 끓고 있다.

양극화 논란을 권력잡기 수단으로 이용하면 ‘자살골’이 불가피하다.

시장경제의 자연치유적 기능을 보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5척단구’는 명예박사 타이틀 하나 갖지 않고 수천년간 되풀이된 굶주림을 극복했다. 그들의 영혼속에 허장성세의 명예욕은 자취를 감추고 치열한 애민(愛民)이 있었다.

애민만이 권력의 정당성을 담보한다.

유수원<편집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