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폐기주장’도 번의(飜意)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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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폐기주장’도 번의(飜意)인가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2.03.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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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黑)과 백(白) 돌이 격돌하는 반상(盤上)의 전투에 ‘꽃놀이 패(覇)’란 전술이 있다. ‘꽃놀이 패’는 한쪽은 져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으나, 다른 한쪽은 반드시 이겨야만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있는 패를 말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진용을 정비한 우파진영과 극좌까지 아우른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좌파진영이 격돌하는 4·11 총선 대회전에서 ‘꽃놀이 패’를 연상케 하는 경우는 없을까.

총선기상도를 분석하는 선거분석가들은 부산 사상구의 손수조·문재인 격돌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어서 아예 게임되지 않을 것 같았던 ‘부산 사상구’가 전국 최대의 격전지로 부상했다.

새누리당에 겁 없이 공천신청서를 냈던 무명의 정치지망생이 민주통합당 ‘낙동강 벨트의 사령탑’ 문재인을 잠못 이루게 하고 있다. 부산일보 여론조사(10~11일)에 따르면 두 후보의 격차는 8.3% 포인트로 오차범위 안으로 접어들었다. 부산 사상선거구가 백중세를 보일 경우 부산에서의 노풍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지난 13일 손수조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방문해 격려한 이후의 지지율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손 후보가 추격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추월을 할지 여부다. 일부 호사가들은 “새누리당이 부산 사상 지역구 후보로 손수조를 결정한 것은 박근혜의 탁월한 감각이자 선택이다”고 입을 모은다.

손수조가 문재인을 이겨버리면 노풍이 소멸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문재인이 손수조를 힘겹게 이긴다 해도 망신살이 뻗치는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다’며 선제포격을 가하던 문재인이 ‘K-9 곡사포’ 대응사격에 망신창이가 되는 형국이다.

문재인에 이어 정동영도 ‘외나무 다리 위의 진검승부’에 몰렸다. 새누리당은 한미FTA 협상의 주역이자 ‘검투사’로 불리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서울 강남을구에 공천해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과의 ‘빅매치’를 벌인다.

정동영 후보는 “한미 FTA가 완성되면 향후 50년간 한미 관계를 지탱시켜 줄 중요한 기둥이 되는 것이다(2006년 3월 17일)”·“한미 FTA가 필요하고 유용하다는 참여정부의 콘센서스가 있다(2006년 4월 13일)”며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찬성발언을 쏟아냈다.

그랬던 그가 2011년 10월 13일 국회외통위에 참석한 김종훈 당시 교섭본부장을 향해 “미국의 파견관”·
“제2의 이완용”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당정(黨政) 요직을 점거했던 한명숙·이해찬·정동영 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420년만에 한미FTA가 발효돼 미국이 한국을 침범한 꼴이 됐다. 임진왜란이 아닌 임진미란(壬辰美亂)이다”·“한미FTA로 인해 경제주권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주게 됐다”·“한미FTA는 한일강제합방과 다를바 없는 강제적 경제합방이다”는 식의 말뒤집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어 FTA 정책을 주도했는데 그 당시 총리와 장관들이 ‘매국노’라고 비난하는데 도대체 ‘매국노’가 뭡니까”·“세계는 관세장벽을 낮추어 교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장벽을 쌓는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FTA전도사와 FTA폐기론자가 격돌하는 서울 강남을구 유권자들의 ‘FTA인식’은 어떠할까.

이 지역 유권자의 55.1%가 한미FTA추진에 찬성했다. 한미FTA 발효를 정지하고 전면재검토해야한다는 응답은 26.3%를 차지했다. 문제는 한미FTA 추진을 국익(國益)추구차원에서 득실(得失)을 따지지 않고 ‘뼈속까지 친일·친미 대통령 MB 심판’으로 몰고가는 정략(政略)에 있다.

‘김일성은 영생(永生)한다’며 무려 3만8천개의 동상을 세워 북녘 동포들에게 경배를 강제하는 3대세습의 북한과 2013 체제(연방제)를 추진하기 위해 반미(反美)코드를 강화하는 노림수는 결단코 저지해야 한다.
DJ(김대중)는 대선 4수(修)를 하는 과정에서 정계은퇴와 정계복귀 선언을 되풀이 하면서 번의(飜意:먹었던 마음을 뒤집음)라는 단어를 동원했었다.

세계 7대 무역대국인 한국이 세계경제력의 25%를 점유하고 있는 구매대국인 미국과 체결한 FTA를 1년 만에 폐기운운한다는 것이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대한민국 번의’라고 너그럽게 수용될까.

미국과의 투자자 국가소송제(ISD)를 폐기한 나라는 좌파가 집권한 볼리비아·에콰도르 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빗장을 걸고 남미의 최빈국(最貧國)들의 반미(反美)를 답습하면 ‘쇄국의 원흉’에게 폐족(廢族)이라는 족쇄가 다시 채워질 것이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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