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싸가지 없는 좌파’ 역풍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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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싸가지 없는 좌파’ 역풍 불렀다”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5.02.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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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입에 달고 살면서 막말·거친 태도·과격한 접근 등을 자제할 줄 모르는 오만한 인격이 ‘통합적 가치’를 도출할 수 있을까.

새민련의 ‘싸가지 딜레마’가 재발했다.

새민련의 새 대표 문재인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참배와 관련, 최고위원 정청래와 전 의원 천정배가 반발했다.

강경파 정청래는 ‘유대인의 히틀러의 묘소참배’·‘우리민족의 일본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비유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참여정부 법무장관 출신 천정배는 “(이승만·박정희 두사람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독재자들”이라며 “그런 독재자들과의 화해는 잘못된 역사가 청산되고 바로 세워진다는 전제 위에서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민련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은 지난 9일 첫 공식 일정으로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 방명록에 “두분 대통령에 대해 과(過)를 비판하는 국민이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공(功)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적었다.

문재인 새민련 대표가 친노(親盧)그룹·극좌파들의 ‘싸가지 없는 정치’를 불식시키지 못하면 ‘대권은 그림의 떡’이라는 인식을 굳힌 탓일까.

당내 강경파들의 반대기류를 의식하고도 ‘이승만·박정희 묘소’ 참배를 강행했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후보 TV 토론 때 박근혜 후보에게 온갖 독설을 퍼붓던 이정희 당시 통진당 후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싸가지 없는 이정희’는 노장층 유권자들의 염장을 질러 ‘좌파 응징 투표’를 유발했다.

석패(惜敗)에 절치부심했던 문재인은 ‘막말·상습적인 분열 조장 발언’ 등 싸가지 없는 문화를 바꿔야 대권을 잡는다는 인식을 굳혔다.

‘앞으로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은 자신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우리 안의 근본주의에서 대선(大選) 패인의 해답을 찾고 싶다. 선(線)을 긋고 편(便)을 가르는 순결주의 같은 것이 우리를 유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게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고 적었다.

대학 운동권의 대부(代父) 전대협 간부 출신 정청래는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건국·산업화 공로(功勞)를 먹칠하고 나치즘의 히틀러·일본 천황 파시즘과 동렬(同列)의 ‘악마급’으로 평가했다.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그 학살현장이나 히틀러의 묘소에 가 참배할 수 있겠느냐.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천황(天皇) 묘소에 가서 절을 할 수 있겠느냐.”
정청래의 메가톤급 악담(惡談)에 비난의 댓글들이 달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히틀러가 아니라 비스마르크(독일 통일을 완성시킨 철혈수상)에 비유해야 옳다. 국립현충원을 일본 신사(神社)에 비유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머리에 든 것은 ‘독재’라는 단어 밖에 없는 사람. 입만 열면 반사적으로 독재 소리가 튀어 나온다”·“이승만·박정희를 원수취급하는 너희가 대한민국을 떠나거라”·“미국 문화원 방화범(放火犯). 이 자는 모든 것을 북한정권의 시각으로 본다.”

당 대표 문재인을 원색비난한 최고위원 정청래는 경계가 느슨해진 우파(右派)들을 단결시키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원상회복의 도우미로 활동 중이다.

정청래는 지난 8일 열린 전당대회 직후 언론(데일리한국)과의 인터뷰를 갖고 “계파·전략적 연대없이 당원과 국민만 보고 간다”·“새민련의 정체성과 노선은 김대중 정신·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데 있다. 두분의 정신이 우리의 뿌리이고 정체성이다”고 강변(强辯)했다.

정청래가 “계승하겠다”고 다짐하는 ‘김대중 정신’은 ‘박정희 대통령 묘소 참배’였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1997년 대통령 당선 다음날 바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5·16의 기획자’ 김종필·‘포항제철 설립자’ 박태준 전 자민련 총재와 함께였다.

좌파와 우파가 손을 잡고 정권을 잡은 뒤 과거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며 당시 IMF 국난(國難)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통합으로 힘든 시절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야당의 첫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DJ의 열린 마음’이었다.

새누리당의 아성(牙城)인 대구에 새민련의 깃발을 꼽으려고 공을 들이는 전 의원 김부겸은 정청래를 향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과 같은 하늘 아래 못 산다는 식이면 안된다”·“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대통령의 화해와 관용, 그리고 조정의 리더십을 진심으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민련 당권(黨權)을 장악한 친노그룹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세계 7대 무역대국(大國) 대한민국을 만든 양날개이다’는 상식마저 부정한다.

DJ에 이어 야당후보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며 삐뚤어진 역사관을 피력하며 과거사 뒤집기에 혈안이었다.

DJ의 좌우통합 제스처를 폐기처분하고 6·25 전란(戰亂)을 일으켜 300만명을 죽게 한 김일성·김정일 세습 정권에 추파를 보내고 아양을 떨었다.

주사파(主思派) 노선을 고집한 대학운동권 전대협(全大協) 출신 정청래는 노무현의 분열·편가르기 정치 답습을 자향하고 있다.

분열의 정치는 언론분열·공중(公衆) 분열을 심화시키게 된다.

사회의 전방위분열은 총체적인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다.

주사파, NC계열(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은 “북한은 적어도 민족적 자주성이란 점에서만은 남한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확고히 한다.

새민련의 당권을 장악한 친노그룹들은 “이승만은 반(反)민족적 분단의 원흉이고, 박정희는 미국 식민지 종속화를 심화시킨 장본인”이라고 규정하는 주사파들의 역사인식과 궤(軌)를 같이 한다.

정청래의 ‘박정희=히틀러’라는 역사인식은 주사파 운동권에서 유래했다.

역사인식은 주체사상을 토대로 하면서 정치적 행보는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이중성을 보였다.

정청래는 ‘국민의 눈높이’를 알기는 할까.

데일리한국·주간한국이 신년맞이(2015년) 여론조사를 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이상(53.8%)의 국민들이 ‘임기 중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고 응답했다.

2위 노무현(18.4%), 3위 김대중(15.3%) 전 대통령 순(順)이었다.

공영방송의 ‘국정운영을 가장 잘한 대통령 조사’에 따르면 박정희-69.8%, 김대중-12.5%, 노무현-4.5% 순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히틀러에 열광했던 나치 당원들과 흡사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것일까.

한국 국민들의 눈높이는 세계적 석학들의 평가와 일치한다.

정곡을 찌르는 그들의 평가는 ‘박정희 연구’의 고전(古典)이 되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다(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했다. 그는 국가에 한 몸을 바친 리더였다(에즈라 보겔 하버드대학 명예교수)’·‘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이 창출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이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오버홀트 카터 미국대통령 수석 비서관)’.

시도 때도 없이 막말을 해대는 3류 좌파를 국회의원·야당최고위원으로 추대하는 투표인들 체질도 무대뽀 막말 체질일까.

민주화·독재를 입에 달고 살면서 북쪽 ‘최고 존엄’을 옹위하는 그룹의 실체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종북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정권을 잡겠다는 야욕(野慾)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득(得)이 될 것이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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