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숭배’ 진성 종북들의 만행 끝장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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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숭배’ 진성 종북들의 만행 끝장내야”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5.03.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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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테러를 가한 김기종(55)이 ‘종북(從北)의 민낯’을 드러냈다.

김 씨를 수사중인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9일 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진술을 공개했다.

‘남한에는 김일성(金日成)만한 지도자는 없다’·‘우리나라는 반(半)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정권이다’·‘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의 발표는 믿을 수 없다’·‘국보법은 악법(惡法)이다’는 진술은 ‘진성(眞性)종북’·‘순도100% 주사파’임을 증거했다.

특히 김 씨는 “김일성 장군님은 20세기 민족지도자.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하고 38선 이북을 접수한 후 자기 국가를 건설해 잘 이끌어온 훌륭한 지도자이다”며 ‘김일성’ 찬양을 늘어놓았다.

김 씨는 ‘좌파양성소’ 성공회 대학의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성공회 대학에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크게 기여하는 진성 종북들이 강단을 점거하고 있다.

김일성 찬양 경력이 가히 충격적인 ‘좌파역사계의 얼굴’ 한홍구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홍구는 “김일성은 자수성가형 민족영웅, 스탈린이나 등소평도 넘볼 수 없는 혁명의 창건자”·“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했던 20세기형 민족주의자이다”며 숭배한다.

‘3류 좌익’ 한홍구·김기종의 극찬 그대로 김일성은 ‘자수성가형 민족주의자’인가.

2000 페이지 대작(大作) ‘북한의 역사’를 저술한 김학준 교수(서울대·전 동아일보 회장)는 1946년 7월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김일성과 박헌영(남노당 총책)을 불러 ‘괴뢰 북한지도자’ 선발 면접시험을 치른 전후사정을 기술했다.

스탈린은 풍채 좋고 아부하는 김일성을 낙점하고, 깐깐하고 학자풍(風)의 박헌영을 배척했다.

훗날 김일성은 황장엽 비서에게 “스탈린에게 불려가 시험을 잘 쳐서 박헌영을 누르고 지도자로 뽑혔다”며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일(韓日)수교를 압박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살아있는 한 수교는 없다”며 잘라 말했다.

화가 난 아이젠하워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저런 고얀 놈이…”하며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김 교수는 ‘미국 대통령에게 호통을 친 한국 대통령’과 소련 독재자에게 아부한 북한 지도자의 차이가 오늘의 남북한 차이이다‘고 기술했다.

스탈린이 위성국 관리자로 책봉한 소련군 대위 김성주는 ‘전설적 영웅’ 김일성으로 둔갑해 북한의 통치자가 되었다.

김일성은 1950년 3월, 6·25 남침전쟁을 일으키기 3개월 전에 중공을 방문해 모택동을 만나 남침지원을 요청했다.

모택동은 김일성과의 대화를 기록해 남겼다.

“나(모택동)는 간밤에 김일성 동지와 한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1개 병단, 3개 군만 지원해주면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그(김일성)는 호언장담했다.”

외세를 빌려 동족상잔, 전대미문의 참화를 일으킨 김일성을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이라며 온전한 정신으로는 찬양할 수 없다.

‘진성 종북’ 한홍구·김기종의 칭송 그대로 김일성은 북한을 ‘인민의 낙원’으로 만든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지도자’였을까.

1961년 박정희 소장이 5·16으로 집권했던 시절 우리나라 GDP(국민소득)은 79달러로 세계 125개국(國) 가운데 101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

외환보유고는 2000만 달러 안팎.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기아(飢餓)공화국이었다. 당시 북한의 국민소득은 320달러로 세계 50위 안에 든 잘 사는 나라였다.

박정희는 개방정책, 수출진흥에 나라의 살길이 있음이 확신하고 ‘팔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팔아라’며 수출을 독려했다.

1963년 8680만 달러였던 수출이 1964년 11월 30일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날이 ‘수출의 날(지금은 ‘무역의 날’)’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그 협력자 김일성 그룹은 1946년부터 북한을 완벽하게 장악,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등 정부에 준(準)하는 통치행위를 전개했다.

북한의 경제체제는 일제(日帝)의 전시경제체제를 계승했다.

공출(供出)이라는 강제수매제를 성출(誠出)로 이름만 바꿔 값도 치르지 않고 쌀을 거둬갔다.

일본경제학자들은 “북한민중에게 과연 해방이란 것이 있기나 했는가…”라며 일제의 통제경제계승을 비판했다.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경고처럼 북한 노동당의 계획경제는 독재와 노예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북한의 계획경제아래서 생산수단의 거래가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에 합리적 생산수단을 결정하지 못했다.

북한은 1940년대식, 일제가 남긴 낡은 설비와 기술을 바탕으로 군사목적의 중화학 공업 우선정책을 강력추진했다.

경공업을 무시한 채 막대한 고정투자를 강행해 생산성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반면에 박정희 대통령은 경공업을 먼저 일으킨 바탕에서 외국의 최신 중화학 공업기술을 도입하는 전략을 채택해 1970년대부터 압도적 생산성으로 북한을 추월했다.

1970년 중앙정보부 평가서는 “남한 국민총생산은 75억5천만 달러, 북한은 29억2천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이 223 달러, 북한은 209달러로서 남한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결론내렸다.

국가발전이란 대전략(大戰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의 수령’ 김일성을 압도해 ‘오늘의 한국’의 디딤돌을 놓았다.

2011년 3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정희 시대’란 744쪽의 두툼한 논문집을 출판했다.

공동저자인 에즈라 보겔 하버드 대학 명예교수는 “박정희는 의심할 바 없이 한국 근대화의 길을 돌파해낸 핵심지도자다.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이 크게 성공한 이유를 13년간 찾았다”·“박정희는 엄청난 리스크 테이크를 하는 모험가였다. 고위험·고성장·고비용(High risk, High payoff, High cost). 박정희는 대박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대박나게 만들었다. 박정희는 평균성장률 8.5%의 고도성장시대를 개척했다”고 분석했다.

1969년 10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에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조국근대화를 성취하려는 그의 정책에 일일이 반대하는 야당에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개발독재’를 강행했다.

국가자원의 집중화를 위해 재벌과 국가의 정경유착을 인위적으로 조장했다.

국가가 마스터 플랜을 짜고, 재벌은 그에 따른 서브 프로젝트를 수행해 단기간에 국가경쟁력을 키웠다.

중국의 등소평이 개혁·개방정책전환에 크게 참고했던 ‘박정희 리더십’은 김일성보다 한수 아래일까.

북한의 요덕수용소 10년 생활 끝에 탈북해 조선일보 기자가 된 강철한은 ‘김일성만한 지도자는 남한에 없다’는 김기종을 ‘미친 놈이다’며 원색비난했다.

“살아생전 자기동상으로 온 나라에 도배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인간, 공산주의 외피를 쓰고 봉건세습을 단행한 추악스러운 인물보다 못한 사람도 드물다”며 종북세력과 선거연대를 구축했던 새민련도 싸잡아 힐난했다.

한홍구는 유신시절을 ‘히틀러 독재’에 비유하고, 3류좌익들은 “김일성 주석님은 조선의 하늘이십니다(문익환 목사)”·“김일성 수령의 영생을 기원한다(문규현 신부)”·“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노수희)”·“종북(從北)보다 종미(從美)가 문제(이석기)”라고 뇌까린다.

종북정권 10년이 남긴 붉은 판검사와 저질 기자들이 반미(反美) 소리만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합세했다.

좌우합작 노선을 추구했던 민화협 모임에서 ‘북한의 앞잡이’가 미국대사 살해시도를 자행했다. 북한은 즉각 ‘김기종의 테러’를 찬양하고 ‘제2의 안중근 의사’로 격상시켰다.

대북비료 지원을 추진하던 ‘민화협’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한국을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식민지, 반(半)식민지 빈농국가로 간주하고, ‘민족해방’ 잣대를 들이대는 ‘3류좌파 민족주의’의 만행이 더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우파논객들은 일본대사에게 벽돌을 투척하는 등 김기종의 ‘소영웅주의’를 6차례나 벌금형·집행유예선고로 관용한 붉은 판사들이 ‘종북의 최후보루’라고 질타한다.

애국 국민들은 종북들의 준동을 직시하고 ‘여론의 광장’으로 끌어내어 ‘민족의 공영을 훼손하는 3류좌익’으로 단죄해야 한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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