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똥별’들의 ‘도덕적 해이’ 비리 파헤쳐 군기(軍紀) 바로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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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똥별’들의 ‘도덕적 해이’ 비리 파헤쳐 군기(軍紀) 바로 세워야”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5.04.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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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1515~1573)은 ‘임진왜란 7년간의 전란(戰亂)기록’을 남겼다.

유성룡은 눈물과 회한으로 집필한 ‘전란기록’에 교훈적인 작명(作名)을 했다.

지난 일을 경계하고(懲), 훗날 환란이 없도록 조심(毖)하려는 뜻을 담아 ‘징비록(懲毖錄)’이라고 이름지었다.

징비록에는 ‘리더들의 부끄러운 장면’이 숱하게 기록되었다.

왜적에 쫓겨 갑옷을 벗고 알몸으로 줄행랑치는 장수, 평양성을 몰래 탈출하려다가 들통이 나서 낫을 들고 항의하는 민초들 앞에 전전긍긍하는 임금,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군량미를 제때 보급하지 않았다며 유성룡과 호조판서를 꿇어 앉힌 뒤 군율로 다스릴 때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은 ‘치욕’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통한의 기록’을 되풀이 하게 된다.

한국군, 특히 한국해군에서 징비록의 부끄러운 기록에 버금가는 낯 뜨거운 장면들이 재현되고 있어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계의 역사상 최고의 해군 제독(提督)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은 한민족(韓民族)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소중한 유산이다.

이 충무공의 애국·애민을 본받아 바다를 지키는 간성(干城)이기를 자임했던 ‘해군의 사령탑’이 부패로 자멸하는 졸장(卒將)인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부끄러운 지휘관 ‘원균의 길’을 해군 참모 총장들이 답습하는 만용을 부렸다.

지난 2일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은 방위사업청에 근무하는 해군 관계자 170여명 앞에서 “해군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해군이 도둑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떨어질 곳도 없다. 제2창군(創軍)의 각오로 해군을 재건하자”고 호소했다.

정규 사관학교를 나와 각급지휘관과 부대장을 거쳐 장군이 되어 참모총장에 오른 ‘장군 중의 장군’ 2명이 구속되었다.

어깨에 별을 3개나 다는 해군중장이 골프장 여자 캐디에게 버디를 할 때마다 ‘엉덩이를 흔들어라’고 상습적으로 강요한 ‘성추행’이 드러나 옷을 벗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무거운 골프채 백을 메고 봉사하는 딸내미 또래의 캐디들 자존심을 깔아뭉갠 ‘똥별’은 자신의 행위를 ‘별3개’에 걸맞는 ‘위엄있는 처신’으로 우기고 있을까.

1949년 대통령령(令) 제87호 ‘해군사관학교령’이 공포됨에 따라 설립된 해군사관학교의 교훈은 ‘진리를 구하자’·‘허위를 버리자’·‘희생하자’ 3가지.

이 교훈에 따라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갖춘 해군초급장교를 양성하고 있다.

해군의 장군들은 대부분 사관학교출신들이다.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의 해양안보를 책임진 해군의 승패는 지휘관, 장군들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장군들은 평생 명예와 충성심으로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사관학교를 다니며 체력과 정신을 단련하고 군사학을 익혀 나라의 간성(干城)이 되겠다고 맹세한 사나이들이다.

사관학교 출신 초급장교들이 영관급을 지나 장군으로 진급하기까지 피나는 경쟁을 통해 별을 다는 장군이 되면 그 명예와 권위는 별처럼 빛나게 된다.

특히 ‘사령관’이나 ‘참모총장’ 지위에 올라 수많은 장병들을 지휘하는 위엄은 어디다 비유할 수 없는 자존(自尊) 그 자체이다.

임무를 마치고 전역해도 장군의 호칭과 예우는 국립묘지까지 동행한다.

장군의 노후는 두둑한 군인연금으로 뒷받침 해준다.

장군들은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주어야 자신의 명예를 더하게 된다.

리더십의 원론(原論)은 청빈(淸貧)과 청렴이다.

리더십의 각론(各論)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우선순위가 교차하고 있으나 원론(原論)인 ‘청빈’·‘청렴’은 불변의 가치이다.

지난해 4월 중국은 인민해방군 중장의 비리로 떠들썩했다.

40년간 인민해방군 장성으로 재직하면서 약 3조 6천억원을 축재하고 고급 마오타이주(酒) 1만병을 모은 것으로 보도됐다.

중국 해방군 소장은 “청일전쟁 패배도 부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부패를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진다”고 지적했다

군기(軍紀)가 약한 병사와 장수가 모여 패배만 하는 오합지졸의 군대를 비유적으로 부르는 말이 ‘당나라 군대’이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당나라 군대’로 전락하게 하는 ‘부패만연’을 경계하는데 ‘한국해군’은 ‘당나라 군대’로 돌변하고 있다.

29대 해군 참모총장 정옥근이 구속기소된 데 이어 30대 총장 황기철도 구속되었다.

정옥근은 해군 참모총장 임기 2년 내내 뒷돈 챙기기에 혈안이었던 것이 드러났다.

군납업체 STX회장에게 “MB대통령과 함께 군함에 시승하도록 해주겠다”며 7억원을 뜯어냈다.

30대 해군 참모총장 황기철은 최첨단 구조함정 통영함에 2억원짜리 어군탐지기를 달고 41억원을 지출했다.

해군 장성 6명이 1700억원대 방산비리에 연루되어 쇠고랑을 찼다.

해군의 최고 지휘관인 참모총장들이 ‘한탕주의’를 추구해 천안함까지 폭침당한 ‘당나라 해군’이 강군(强軍)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미국과 영국 해군의 교과서인 ‘해전의 모든 것’에는 이순신을 전설적 명장(名將)으로 추앙하는 반면 원균은 조선 수군을 패망으로 몰아간 무능한 제독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전략가 제갈공명은 “천하를 얻더라도 도덕성과 신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며 평생을 청렴과 도덕성이라는 가치관으로 살았다.

청렴한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이기를 기피하고, 부패·무능의 상징 ‘원균의 길’을 따라간 해군 참모총장 정옥군·황기철은 차디찬 감옥에서 ‘통회의 징비록’을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해군 참모총장’이란 명예에, 두둑한 군인연금에 무엇이 모자라 뒷돈 챙기기에 혈안이었는가.

그들은 도덕적 의무와 봉사를 내팽개친 ‘당나라 군대’ 참모총장이었다.

제국주의 야심으로 아시아를 전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간 일본에 결정적 패배를 안긴 두명의 명장(名將)은 이순신과 니미츠 제독이다.

이순신의 한산대첩은 세계 4大 해군대첩의 하나로 꼽혔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제독이 거둔 미드웨이 해전승리는 일본 제국주의 침몰을 부른 결정타였다.

니미츠가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발령받았을 때 진주만의 전함은 거의 대파되었거나 침몰한 상태였다.
3척의 항모를 주축으로 일본의 연합함대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1942년 5월 29일 항모 4척을 위시해 잠수함·수송선까지 합쳐 350척의 함정과 1100대의 제로센 전투기에 10만명의 일본 해군전대가 미드웨이 공략에 나섰다.

니미츠 원수는 일본 통신 암호해독으로 일본연합함대의 진로를 알아차리고 매복하면서 기습공격을 노렸다.

미국 폭격기들은 일본 해군의 대들보였던 4척의 항모를 격침시켰다.

열세전력으로 압승을 일궈 낸 니미츠는 정보전의 승리(암호해독)라고 자평하면서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거론했다.

“일본 해군은 16세기 말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의 대패를 감수했다.”

미국 해군제독 니미츠는 4.5백년 동안의 일본 해군전사(戰史)를 꿰차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승리의 주역 니미츠는 전역 후 기업과 대학의 고액 스카우트 제의도 정중하게 거절하고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미국 최초 해군 오성(五星)장군의 품위를 지켰다.

충무공 이순신과 니미츠 제독은 청렴과 도덕성을 소중히 여긴 ‘장군 중의 장군’이었다.

한국 해군의 ‘똥별’들의 추락은 청빈·청렴의 존귀함을 일깨운다.

방산비리는 이적(利敵) 행위로 처단해 국가기강을 반드시 바로 세워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기무사령관·국정원장 출신들이 방산비리 무기중개 그룹의 사장자리를 꿰차는 것은 ‘꼴불견은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명예와 자긍심을 내팽개친 지도층은 부패로 자멸하게 된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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