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없는 좌파’들의 ‘반(反)대한민국’을 방치해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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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없는 좌파’들의 ‘반(反)대한민국’을 방치해서는 안돼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5.05.08 17: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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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당(黨) 영수(領袖) ‘유민아빠’ 김영오의 심기가 불편하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한 결과를 지켜보고 “참담한 심정이다”·“정부 여당의 죄(罪)에 대한 면죄부를 주겠다고 의미하지 않음에도 정부·여당은 그렇게 또 생명을 짓밟고 돈만을 이야기 한다”며 해상교통사고를 선사(船社)의 과실이 아닌 정부·여당의 모살(謀殺)로 계속 몰아간다.

해상교통안전법의 국회통과에 발목을 잡았던 야당 새민련에는 한마디 불평도 없다.

김영오는 자신의 ‘효소단식’에 동참했던 새민련 대표 문재인과 최고위원 정청래에게는 ‘전국구 스타’로 부각시켜준 후의를 고마워한다.

그러나 쌍욕쟁이 김영오의 막강한 후견인 문재인의 처지가 곤궁하다.

4·29 재보선에서 0대4 참패를 당한 이후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다”·“강력하고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며 큰 소리를 토해냈으나 반향이 없었다.

“사람·기회 못잡는 문재인”·“문재인 리더십은 배제의 리더십”이란 비난이 빗발치고 “친노수장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면 집권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경고음까지 울린다.

‘김영오의 우인(友人)’ 정청래는 “문재인 체제 수성”을 외치며 ‘친노 패권주의’의 수문장(守門將)이 되어 진땀을 흘린다.

김영오의 비호세력들이 자구(自救) 활동에 허우적거릴 때 김영오는 ‘족보 없는 좌파’로 신장개업했다.

김영오는 지난 2월 미국으로 건너가 종북단체와 반정부 투쟁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고 연대를 다짐했다.

또 진성(眞性) 종북단체 ‘코리아 연대’가 초청한 프랑스 극좌파 인사와 주한미군철수와 유엔사(司) 해체, 평화협정체결 등을 논의했다.

통진당 해산에도 불구하고 각계 각층에는 종북세력들이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적성(利敵性)이 확인된 단체만도 61개, 회원수는 1만9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때 100일 쇠고기 난동을 주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해 과격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얼굴마담이 세월호 단원고(高) 유족 유경근과 김영오 등이다.

세월호 단원고 유족들의 대부분이 호남출신들.

이들은 붉은 정치세력에 흡수되어 반(反) 박근혜 정부 전위대가 되었다.

세월호 단원고 유족 대표 유경근은 노사모 출신·2013년 11얼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그의 글, ‘박근혜 비난을 넘어 조롱·저주하는 내용’이 언론과 SNS에 소개됐다.

“바뀐애(박근혜)는 물러나야 한다. 스스로 안 나가면 끌어내려야 한다. 이승만을 끌어내린 것처럼 끌어내려야 한다. 강제로 끌어내리지도 못하면 다음 번엔 무슨 수를 쓰든 대통령을 가져와야 한다.”

‘붉은 정치세력’ 민노총에 흡수된 세월호 단원고 유족들은 지난 5월 1일 청와대행을 시도하며 새벽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이승만 건국대통령·박정희 산업화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틈만 나면 표출한다.

2014년 11월 통진당 원내대표 오병윤은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모든 불행의 씨앗이며, 이 불행은 박근혜 정부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노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오병윤은 ‘광주전남연합’의 핵심인사로 ‘경기동부연합’의 이석기와 쌍벽을 이뤘던 통진당의 주축.

그는 한미연합훈련을 ‘평양 점거계획’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북전단살포를 “국제민간 항공기구 협정위반이다”고 했다.

호남출신 ‘진성종북’에 이어 ‘얼치기 종북’까지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박정희 산업화 대통령을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애초 한국이나 미국 관가(官街)에서 모두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체결, ‘한미동맹’을 결성해 북한체제의 남한 진출기회를 영구히 차단시켰다.

산업화 대통령 박정희는 남한의 ‘한강의 기적’을 도출해 남노당 잔당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변혁의 가능성을 영구히 봉쇄했다.

1960년 8월 4일 김일성은 최초로 ‘북남연방제’를 제안했다.

4·19 직후 평양방송은 자정이후 30분동안 ‘남파간첩들에 대한 지령문’ 난수표를 불렀다.

좌익들은 끈질긴 시위로 장면정부를 흔들었다.

김일성은 남한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감상적 통일논의에 편승해 ‘위장평화 통일공세’ 연방제 협상을 제안했다.

당시 북한의 1인 GNP는 143달러로 남한의 1인 GDP 80달러를 크게 앞질렀다.

김일성은 남한내 남노당 잔당과 연계해 우회적 적화통일 전술 ‘북남연방제’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그러나 느닷없이 박정희가 나타나 연방제 통일전략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박정희는 김일성과 체제경쟁을 벌여 10년후 1971년부터 본격적인 추월을 단행했다.

1971년 남한 1인 GDP는 289달러로 북한의 287달러를 앞서기 시작했다.

1974년 588달러 대(對) 521달러로 우열이 계속 유지됐다.

2013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남한의 1인 GNP는 2만3916달러로 북한의 1280달러와 18.7배 격차를 보였다.

2012년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5위, 무역규모 1조 675억달러로 세계8위로 도약했다.

남한의 국내총소득(GNI)은 1279조5천억원으로 북한의 33조4790억원보다 38.2배 많다.

남한에서 시장경제체제를 유지발전시킨 데에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는 어떤 사회가 풍요롭고 인간적이며 살기 좋은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통일지상주의’에 함몰된 남한의 좌익들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인사말로 주고 받으며 ‘주사파’임을 자랑했다.

박정희 집권 18년동안 반공(反共)이 주요국가정책으로 제시되어 낮은 포복을 했던 좌파들이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낮은단계연방제통일’을 내세우고 ‘이승만·박정희 시대는 정의가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며 침을 뱉었다.

2012년 18대 대선직전 극좌파 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을 제작해 유포시켰다.

남노당 총책 박헌영을 존경해 이름도 ‘헌영’으로 개명한 ‘호남좌파’ 임헌영이 제작을 주도한 동영상은 1910년 일제합병 이후 한반도 역사를 친일파·미제(美帝)영합세력과 자주독립세력간의 백년간 투쟁으로 규정했다.

호남좌파·종북좌파가 ‘악(惡)의 축’으로 폄하하는 미국은 해방 이후 기아에 허덕이던 남한에 ‘잉여농산물’을 퍼부어 준 최대 원조국가이다.

1950~53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병사는 연인원 179만명.

그중 3만7천여명이 전사했다.

이승만·박정희를 왜곡비난한 동영상 ‘백년전쟁’ 문제를 공론화했던 서양사학자 이인호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개혁지향적 우파가 대결하고 견제하는 정치풍토야말로 이상적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흔드는 중차대한 위협은 ‘족보 없는 좌파’에서 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족보없는 좌파’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항일(抗日)을 내세워 김일성 시조의 김씨조선에 정통성을 부여한다.

자주·반미기치로 남한 적화주도세력임을 자처했다.

애국가와 태극기를 부정하고 인공기(人共旗)를 흠모하던 통진당이 강제해산되어도 그 잔당들이 ‘반(反) 대한민국’을 표방하며 ‘박근혜 끌어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2014년 우리나라 국가별 수출비중은 중국이 1460억달러로 26%를 차지해 1위였고, 미국이 620억달러로 11%를 차지해 2위였다.

세계 8대 무역대국 한국의 2대 교역국가인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는 ‘족보 없는 좌파’들의 체제위협을 두고 볼 것인가.

세월호 단원고 유족대표 유경근과 김영오 등이 세월호 단원고 유족들을 ‘족보 없는 좌파’로 변질시키며 ‘공동체 대한민국’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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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한 2019-05-06 21:01:58
문재인에게 한표를 던진 후 땅을 치며 후회합니다
이제야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눈을 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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