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호의 증오’가 친노 퇴출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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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호의 증오’가 친노 퇴출을 재촉한다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5.05.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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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얼굴 생김새가 달라도 부모와 자식은 성격이나 행동이 서로 비슷하여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식 중에서도 아버지를 쏙 빼닮은 ‘판박이 자식’이 있다.

‘판박이 자식’을 시쳇말로 빵틀에서 구워내 모양이 한결 같은 ‘국화빵’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버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막말과 조롱’ 특질이 외아들 노건호에게 고스란히 유전된 현상을 목격하고 국민들은 경악했다.

지난 22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에서 제주(祭主) 노건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놓고 반성도 안했다”며 증오가 가득 담긴 언사로 거칠게 비난했다.

추모객과 문상객에게 예의를 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 하는 제주 노건호가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깽판’을 연출했다.

‘깽판’은 일을 훼방하거나 망치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노건호의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은 ‘깽판’이란 단어를 ‘남북관계 개선’에 원용(援用)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은 “남북관계가 잘 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쳐도 좋다”며 ‘대북지원을 강조했다.

종북(從北)을 지향했던 극좌성향은 예견되었지만 대통령 후보에 걸맞지 않게 정제(精製)되지 않은 표현을 남용해 ‘조금 지나치다’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두고 국민의 동정심과 ‘노사모’ 등 추종세력이 가진 증오심을 결합한 ‘친노패권주의’가 한국 정치판을 ‘분열·대립’ 수렁으로 몰아갔다.

원조 친노(親盧)의 외아들이 추도식을 현실정치의 연장선장으로 몰아가면서 ‘분열정치’의 부활 노림수가 약발을 받을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요직에 앉아 ‘오버 페이스’를 경계했던 김병준 교수(국민대)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이 무슨 의미인지 친노 스스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봉하마을 추도식이 현실정치의 연장선상으로 부상했다. 이는 노무현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친노 패권주의’는 주사파·종북 ‘극좌노선’에 도덕적 우월감이 결합해 빚어내는 ‘코드문화’·‘배타성’·‘독선’으로 요약된다.

제주(祭主) 노건호는 대(對) 김무성 비난에 독선·조롱을 담고, ‘아버지의 자살’을 ‘정치적 타살’로 몰아가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국가원수’로 한나라를 영도했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결행한 선례는 세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20·30세대의 지지를 한몸에 모았던 ‘원조 친노’가 강요에 의해 자살, 특히 ‘정치적 타살’을 당했다는 가정(假定)은 설득력이 없다.

‘청렴’·‘도덕성’을 유난히 앞세웠던 노무현은 ‘가족들의 부패’에 절망하고, 자부심이 산산조각나는 ‘불명예의 나락’을 차마 볼 수 없어 초개(草芥)와 같이 목숨을 버렸다.

그가 남긴 유서(遺書)에는 가족들의 부패 스캔들로 도덕적 상처를 입고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 속죄의 길을 선택한 애절한 심경이 담겨있다.

특히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원망하는 굿판’을 조성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특히 운동권 체질의 친노세력이 정치적 난장판 대결을 유도해 나라의 혼란을 조성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다는 당부의 뜻을 담았다.

외아들 제주(祭主) 노건호와 친노들은 노기(怒氣)를 띤 얼굴과 독설로 유지(遺志)를 배척했다.

노건호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대인배’라는 반어법(反語法)까지 써가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고 ‘부전자전(父傳子傳)’·‘그 애비에 그 아들(Like father, like son)’을 연상했다는 평자(評者)들이 있었다.

또 봉하마을 추모식장을 메운 친노세력이 비노(非盧) 정치인 김한길·천정배에 “배신자”라는 야유를 보내고 물을 뿌리는 장면은 노무현 정부시절 문성근·명계남이 이끌던 완장부대의 ‘완장질’을 떠올리게 했다.

노무현은 ‘통합과 분열’을 교차시킨 이율배반(二律背反)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변칙과 원칙, 부정과 긍정을 시간차로 노출시키면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맹목적 ‘북한정권 짝사랑’으로 극좌파 정체성은 확실히 했다.

‘소름 끼치는 노무현 어록(語錄)’은 친노에 대한 경계심유지의 당위성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불행한 역사를 겪었다(2003년 4월 3일 임시정부 수립 84주년 기념식 축사)”며 한국의 현대사를 폄하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괴물 같은 존재’라는 좌파들의 자학사관(自虐史觀)을 국가기념행사에서 뇌까렸다.

지난해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 ‘국제시장’은 남녀 주인공 ‘덕수’와 ‘영자’가 천신만고 끝에 성취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현대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노무현이 ‘국제시장’을 보았으면 어떤 소감을 담아냈을까.

‘토(吐)’가 나온다고 언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무현의 ‘북한 사랑’은 유별났다.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줘도 결국은 남는 장사(2007년 2월 1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 한국 정부의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2006년 12월 9일 뉴질랜드 교포간담회)·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방어용이다(2006년 향군지도부 초청 환담)” 등 종북 발언에 놀랐던 우파논객은 “대한민국이 지켜진 것이 기적이다”고 안도했다.

또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읽고 “도저히 맨정신으로 읽을 수 없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다”며 개탄했다.

좌익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물든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과 미국을 미워하고 아직도 전쟁중인 주적(主敵) 김정일에게 아부성 발언을 늘어놓는 ‘희한한 정상회담’을 목격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때때로 ‘우회전’을 시도해 그의 정체성을 헷갈리게 했다.

2004년 11월 칠레를 공식 방문했던 노무현은 숙소호텔에서 동포 간담회를 열고 역대 대통령들에 긍정적 평가를 내려 눈길을 끌었다.

“이승만 시대 토지개혁·농지분배를 했다. 지나고 보니 정말 획기적 정책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이었다”·“박정희 시대는 독재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서도 산업화 과정을 이뤄왔고 여기까지 왔다”고 열거했다.

퇴임 후 2008년 11월 노무현은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김형아 교수(호주 국립대)에게 “외국에 돌아다녀보니 외국지도자들이 온통 박정희 얘기 뿐이더라”·“박정희가 비록 독재의 힘을 빌렸더라도 뛰어난 관치경제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게 한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실토했다.

대통령 재임시절 ‘박정희 흔적 지우기’에 열중했던 노무현은 퇴임 후 ‘박정희의 공(功)과 과(過)’를 가려 평가하는 각성을 보였다.

한국 현대사의 침을 뱉었던 노무현은 ‘긍정의 시선’·‘인식의 전환’을 노출했다.

‘분열의 리더십’에서 ‘통합의 리더십’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극좌 코드문화·끼리끼리 패권주의를 고수하는 친노세력에게 ‘호남의 경고장’이 배달됐다.

최근 광주일보가 놀랄만한 여론조사결과를 제시했다.

광주·전남에서 ‘내년 총선 새민련 후보지지’가 26.3%에 그쳤다.

말뚝만 꽂아도 당선되었던 텃밭에서 ‘친노패권주의 용도폐기’ 사인이 나왔다.

‘싸가지 없는 진보’·‘친노 패권주의’가 종언을 고(告)하고 있다.

호남 표심이 극좌세력·운동권 코드문화 배척을 공식화 했다.

‘좌파 해방구’ 광주의 반(反)친노기류 향방이 주목된다.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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