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돌 기념우표 발행’ 제지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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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돌 기념우표 발행’ 제지할 일인가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7.06.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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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총리가 취임사에서 여러차례 ‘촛불혁명’을 얘기했다.

그는 “촛불혁명이 아직도 진행중이다”며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다”고 규정했다.

‘국민들의 심부름꾼’인 공무원들이 촛불정권 공신(功臣)들의 세도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는 것이 온당할까.

촛불정권 출범의 일등공신 ‘민노총’은 ‘제 세상을 만났다’는 식의 세도를 과시해 ‘새로운 적폐’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3일 민노총은 경총 해체를 주장하며 경총회관 로비에서 기습농성을 벌였다.

민노총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장섰다”며 특정 정부인사철회를 요구했다.

또 “최저임금 1만원 즉시인상을 관철하겠다”며 오는 30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중소기업청의 ‘2016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체 13만 4000곳 중 30%가 현재 적자를 내고 있다.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영업이익 1억원 미만인 업체와 현재 적자업체 등 6만여개가 한계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촛불정권과 민노총이 합세해 중소제조업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박근혜 정부가 노조반발에도 119개 공기업·준정부기관에서 도입시키기로 했는데, 이를 백지화시켜 과거의 철밥통 시절을 복구시켰다.

민노총 주력세력인 금속노조가 위세를 과시하는 구미시에서 민노총 구미지부, 전교조 구미지회 등 촛불혁명 세력이 ‘반(反) 박정희’ 시위에 나서 이목을 끌었다.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올해 11월 14일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사업’을 준비해 왔다.

구미시는 지난해 4월 기념사업의 하나로 우정사업본부에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했다.

지난 14일 민노총 구미지부, 전교조 구미지부, 구미참여연대 등 좌파단체들이 “독재자 미화·우상화는 국민적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계획중단을 요구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9월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를 예정대로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구미시 문화관광 담당관은 “박정희 대통령은 구미의 문화관광 아이콘이며, 탄생 100년째라는 것도 한번밖에 오지 않는 날이다. 너무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이 좌파들의 주장처럼 ‘과도한 우상화’일까.

2011년 박우희 세종대 총장은 <우리도 ‘功七過三’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언론기고문을 통해 “극한투쟁으로 점철된 한국의 정치도 이제 조금 더 성숙한 관용과 배려, 한층 차원 높은 대도(大道)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라며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공칠과삼’의 문화를 소개했다.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모택동은 당과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전대미문의 극좌적 오류를 저질렀다”며 탄핵했다.

모택동이 사망한 후 그가 추진했던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은 혹독한 비판과 격하운동의 표적이 되었다.

자본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홍위병의 공격을 받았던 등소평(鄧小平)이 나서 ‘모택동의 공(功)은 칠(七)이고 과(過)는 삼(三)이다’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논리를 내세워 중국인민을 달랬다.

등소평은 자칫 위기를 맞을 수 있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지켜내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등소평의 공(功)은 ‘개혁·개방’의 설계자였고 과(過)는 ‘천안문사태’ 진압이었다.

모택동의 후임권력, 등소평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란 지혜로운 통합노선을 채택해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하지 않고 과거의 공과(功過)를 균형있게 평가하며 국가적 에너지를 개혁·개방에 결집시켰다.

2014년 등소평 탄신 11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 사천성(省) 광안시(市)는 사원광장(思源廣場)을 조성해 14억 인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천지개벽(天地開闢)’의 초석을 쌓은 ‘등소평의 공(功)’을 기리고 있다.

사원광장(思源廣場)이란 명칭은 음수사원(飮水思源)에서 유래했다.

‘음수사원’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그 갈증을 해소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근본인 우물을 누가 팠는지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슈퍼차이나의 음수사원’으로 등소평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압축성장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음수사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정말 외계인(外界人) 같은 두분이 대한민국을 구(救)하셨다. 한분은 이승만 박사이고 또 한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정말 하늘에서 이런 외계인 같은 지도자를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시각은 ‘독재자’란 편향된 좌파적 시각을 압도한다.

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독재자라고 몰아붙이지만 이 분들만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희생한 분은 없다”·“청렴결백한 장기집권이 나라를 세우고 키웠다”는 우파적 시각도 있다.

세계10위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의 성취는 ‘민주화업자’들의 안목과 설계에 의한 것일까.

독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학교·고교용 역사·지리 교과서들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과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수준은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경제개발 40여년만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고 기술했다.

2차대전 패전이후 단기간에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부흥을 이룬 독일의 교과서는 “전쟁의 폐허에서 30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무역대국에 오른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기적’이다”고 평가하면서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남한을 농업국가에서 산업능력을 가진 국가로 탈바꿈 시켰다”고 기술했다.

1973년 포항종합제철 건설을 필두로 울산석유화학단지, 온산의 비철금속기지, 창원 종합기계공업기지, 거제도의 조선기지, 구미의 전자기기 등 7대 중화학 공업기지를 차례로 건설했다.

68년 수출총액 5억달러의 농업국가시절 100억달러를 투입한 중화학 공업육성은 ‘지도자 박정희’가 부국강병(富國强兵) 집념으로 엮어낸 대역사(大役事)였다.

호주국립대학 김형아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추진됐던 중화학공업정책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진행해 왔다.

숙련된 기능공(技能工)이 없으면 공염불에 그칠 중화학공업의 성공을 위해 혁명적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1971년 대한민국 전체기능공이 5000명도 채 안되는 상황에서 1972년~1987년 사이 공돌이(공고생 기능공)가 77만명 늘어나 대한민국 산업혁명을 일으킨 사실에 주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계 공고, 시범 공고, 특성화 공고를 신설하고, 공고생들에 파격적 장학금을 지급해 ‘공돌이 천국(天國)’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성장을 설계하고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것이 ‘촛불혁명’ 주도세력의 폄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촛불은 대한민국의 성장을 폄훼하는 어둠의 세력을 축출하는 빛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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