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유전자가 작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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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의 유전자가 작동된다”
  • 유수원<편집인>
  • 승인 2013.05.12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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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중국 외국환 거래의 허브’로 통하는 중국은행(Bank of China·BOC)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무역은행의 중국은행내 계좌를 폐쇄하고 금융거래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중국은행의 계좌폐쇄조치는 중국내의 다른 은행에도 영향을 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잇딴 제재에도 중국은행을 통해 국제금융거래를 유지했던 북한은 이번 조치로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무역은행은 북한의 유일한 외국환 은행이고, 북한의 대외거래 70% 이상이 중국과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국을 무대로 삼은 북한의 불법적 외화벌이에 족쇄가 채이고, 김정은의 통치자금마련에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상징되던 북중혈맹 관계에 파열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일까.

중국인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관시’를 꼽는다. ‘관시’는 관계(關係)의 중국발음인데도 세계적으로 고유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마는 유독 중국에서 ‘만능키’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의 1백년 단위로 새로운 왕조가 생기고 없어지고를 거듭해 국가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할 경우에 단순한 가족범주를 넘어 이른바 넓은 의미의 패밀리들끼리 함께하는 삶을 모색하게 한다. 이런 끼리끼리의 결속이 ‘관시’이다.

중국인들은 시혜(施惠)와 보답(報答)의 과정에서 특유의 체면이나 인정(人情)에 의한 감정이입과 승화가 일어나 구축되는 ‘유대’를 ‘관시’로 인식한다. 중국에서 관시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정성(眞情性). 가식적으로 만든 관시는 곧 깨어진다는 것.

중국의 관시에도 ‘주고 받기(Give and Take)에 기반한 호혜적 측면의 강약(强弱)에 따라 그 수준과 유지기간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간의 관계에도 ‘나눔과 배려’라는 관시가 배제되고 일방통행적 주문과 고집이 기승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

최근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진정성이 외출한 ‘관시’의 파열행보를 지켜볼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체면을 잃는 일’이라고 회자된다. 체면은 공적으로 지켜지는 개인의 자존심이다. 혈맹(血盟)이란 특별한 ‘관시’를 구축했던 북한과 중국관계에서 북한이 중국에게 체면을 잃게 했다면 어떻게 될까.

작년 12월 중국 외교부는 북한에 대해 “미사일 발사계획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취임특사를 평양에 파견해 미사일 발사 유보를 요청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했고, 중국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철저히 무시당한 꼴이 됐다. 중국이 체면을 크게 구겼다. 중국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제재로부터 보호해 사실상 유엔안보리 제재결의를 무력화 시켰다. 글로벌 리더·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은 ‘대형(大兄)의 체면’도 철저히 무시하는 ‘북한의 오만’에 대해 뿔이 크게 났다.

특히 시진핑 총서기·국가주석은 개혁·개방의 유전자(DNA)를 타고난 사람이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은 중국개혁·개방의 선구자였다. 시중쉰은 국무원 부총리·중앙 상임위(委) 부위원장을 역임했던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였으나 마오쩌둥(毛澤東)과 류사오치(劉少奇)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실각했다. 16년간 감금·유배 등 고초를 겪다가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잡은 뒤에야 복권되어 광둥성 성장(省長)을 맡았다.

시중쉰은 임금이 100배나 되는 홍콩·마카오로 탈출하다 붙잡힌 사람들이 가득찬 감옥을 시찰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뿌렸다. “저들을 탓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나라를 이끌지 못한 우리 지도자의 탓이다”며 자괴(自愧)를 느꼈다.

시중쉰은 1979년 중국 공산당 중앙 공작회의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선전(深玔) 특구 허가를 요청했다. 시중쉰의 역설을 들은 덩샤오핑은 “신전특구를 시험장으로 삼아 한번 해봅시다. 개혁·개방을 위한 혈로(血路)를 뚫으시오”라고 지시했다.

시중쉰의 위민(爲民)을 위한 개혁·개방의 유전자(DNA)는 아들 시진핑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은 16세 어린시절 아버지 실각의 후폭풍으로 ‘반동의 자식’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홍위병조차 될 수 없었던 그는 옌안(延安)의 황토고원으로 하방되어 생산대 생활을 했다.

공산당 입당 신청을 10번이나 퇴짜 맞았던 ‘반동의 자식’이 아버지의 복권으로 저장성 성장이 되었다. 미국을 직접 방문해 투자를 호소했다. 저장성 성장재임 2년만에 사영기업수(數) 30만개를 기록했다. 저장성 총생산의 70%를 담당하는 시장경제를 꽃 피웠다.

시진핑의 철학과 경험은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홍콩·마카오로 탈출하는 인민들을 보고 실정(失政)을 인책하며 회한의 눈물을 뿌린 아버지를 지켜본 시진핑이 ‘최고존엄모독’을 이유로 개성공단을 걷어차는 북한의 김정은을 용인할 수 있을까.

시진핑은 지난달 7일 “자기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한 지역, 나아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대북한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지도부의 변화기류는 곳곳에서 탐지되고 있다. 북한을 친동생처럼 애지중지 해온 중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란을 일으키고, 도사견처럼 사납게 날뛰는 북한을 ‘이제는 버리자’는 단절론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 국장급 고위관리가 김정은을 ‘미스터 김정은’으로 호칭했다. 칭화대(淸華大) 국제관계전략발전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정부, 학계 등 의사결정집단에서 북한의 붕괴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며 “북한이 동독처럼 평화롭게 붕괴한다면 중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소비에트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의 문제였다. 소련은 훌륭한 수소폭탄·전투기·탱크를 생산할 능력은 있었으나 TV·자동차·청바지 생산에 무능했다. 소련 국민들은 소비재를 구하기 위해 배급소 앞에 무작정 기다리는 사회주의 경제생활에 진저리를 쳤다.

북한의 경공업도 완전붕괴되어 생필품의 80%가 중국산이다. 중국 당국이 북한행 봇짐중량도 1인당 20kg으로 규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의 개혁·개방의 유전자(DNA)가 서서히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중국의 혈맹관계의 기반도 상호이익이다.

호혜(互惠)가 실종된 관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최고존엄 김정은 체제는 길어야 10년이다’는 예상이 회자되고 있다.

10년만에 ‘한반도 강산이 변할 수 있을까’ 지켜보자.

유수원<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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